혈관외과 질환중 대표적 질병인 하지정맥류와 림프부종은 여성을 주로 공격대상으로 삼는 병이다. 하지정맥류는 종아리에 푸른 정맥이 돌출된 증세이며, 림프부종은 자궁경부암이나 유방암 수술 후 팔이나 다리가 붓는 증세이다. 왜 여성들에게는 이런 혈관질환이 잘 발생할까.
하지정맥류
꾀병일까, 엄살이 심한 것일까.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조금만 서있거나 걸어도 다리가 무겁고 아프다고 호소하는 여성이 많다. 굵은 종아리에 툭 불거져 나온 푸른 힘줄만 보고 튼튼한 장딴지라고 짐작해선 안 된다. 정맥이 울룩불룩 튀어나온 하지정맥류는 중장년층, 특히 직업상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여성들을 많이 괴롭히는 병이다.
하지정맥류의 남녀환자 비율은 8대 2정도로 여성 환자가 많다. 수술환자의 여자 비율은 8.5대 1.5 정도 .
하지정맥류가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임신이 질병발생의 방아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면 점점 자궁이 커지면서 혈액량이 증가하는데, 이로 인해 골반에 위치한 정맥에도 압력이 가해지게 된다. 무엇보다 하지 정맥류가 발생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임신 중 갑자기 증가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 때문이다. 이 호르몬들이 증가하면서 정맥 벽의 근육층도 이완돼 혈관이 확장되는 것이다.
임신중 나타난 하지정맥류는 출산과 동시에 곧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 같지만, 출산시 손상된 판막은 5∼10년에 걸쳐 서서히 기능을 잃게 된다. 특히 반복되는 출산은 근육벽의 탄력을 떨어뜨려 하지정맥류가 더 쉽게 발생하게 한다.
정맥 속에는 '판막'이 있어서, 피가 다리에서 심장쪽으로 일방통행 하도록 한다. 피가 다리에서 심장으로 올라갈 때는 판막이 열려 피를 통하게 하고, 거꾸로 흐르는 피에 대해서는 판막이 막혀 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 김동익 교수는 "이 판막이 임신 등으로 점점 탄력을 잃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피가 다리 정맥에 고이게 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다리에 있는 가느다란 표피 정맥들이 점점 굵어져서 힘줄이 튀어나온 것(실은 정맥이 돌출된 것)같이 된다"고 말했다.
정맥류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다리 정맥이 비비 꼬이고 부풀어 오른다. 다리에 피가 많이 고이니, 다리가 무거워진다. 가렵거나 피부혈관이 뜨거워져 타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고 잠잘 때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 아주 심한 경우 정맥 주위 피부색이 갈색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정맥류는 월경기간 동안 더 심해질 수도 있으며, 만성 변비가 있는 경우에도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다산(多産)할수록 발생 위험도도 높다. 김교수는 "임신이 거듭될수록 정맥 판막이 반복적인 손상을 입고 근육벽의 탄력도 떨어지게 된다"면서 "첫째보다는 둘째, 둘째보다는 셋째 아이를 임신한 여성에게 하지정맥류 발생률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출산 후 비만도 하지정맥류를 증가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살이 찔수록 복부 압력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정맥류는 유전확률이 높다. 여성은 50%, 남성은 19∼20% 정도로 여성이 남성보다 두배이상 유전될 확률이 높다. 하지정맥류가 발생하는 나이도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10년정도 빨라, 여성환자의 평균 나이는 40∼50대인데 비해, 남성환자는 50대 이상이 많다.
하지정맥류는 장기간 서 있은 후 더 악화될 수 있다. 점원 웨이트리스 미용사 비행기승무원 교사 간호사 같은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하지정맥류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랫동안 똑같은 자세로 있으면 혈액 흐름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치료법은 표피정맥의 굵기에 따라 달라진다. 김교수는 "표피정맥들이 거미발 모양으로 가느다란 실핏줄이 군데군데 모여 미용상 좋지 않은 경우에는 대개 약물치료를 추천한다"고 말한다. 실핏줄에 특수약물을 주사, 실핏줄 내로 혈액흐름을 차단(혈관경화요법)하는 것이다. 표피정맥들이 볼펜 굵기 정도로 굵어져 있는 경우에는 수술을 시행한다. 돌출된 정맥류를 제거하고 고장 난 판막을 갖고 있는 정맥도 함께 제거하는 수술법이다.
림프부종
유방암이나 자궁암 수술을 받은 여성에게는 또 다른 힘겨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암세포가 주위 조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위해 암이 발생한 유방이나 자궁뿐 아니라 주변 겨드랑이나 서혜부 림프절까지 잘라내면서 림프(임파)부종이라는 수술 후유증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림프계가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훼손되고 파괴되면서 단백질 등 림프관 속에서 흐르던 고농도 체액들이 원활하게 심장쪽으로 흐르지 못한 채 세포 사이에 고이게 되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유방암 수술 환자의 15∼30%가 림프부종을 겪고 있으며,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경우엔 35∼45%가 이를 경험하고 있다. 자궁암 환자에서는 수술 환자의 20∼30%가 림프부종을 호소하고 있다. 똑 같은 수술을 받고도 일부 여성에게만 림프부종이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마다 림프관의 해부학적 구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가벼운 림프부종은 유방암 수술 환자 같은 경우 팔이 붓거나 무겁다는 느낌으로 나타난다. 손이나 팔이 부어 평소 끼던 반지가 들어가지 않거나, 옷을 갈아입기 힘들게 된다. 림프부종이 심해지면 정상 크기보다 두 배나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또 감염의 위험도 높아진다. 이러한 연속적인 '삶의 질' 저하는 여성에게 통증 외에 몸의 변형으로 인한 우울증, 만성피로, 사회적 소외감 등을 함께 안겨준다.
문제는 여성 환자들의 이런 고통을 많은 의사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압박붕대 정도나 감아줄 뿐 림프부종의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는 확실한 치료법을 아는 경우도 드물다. 이러다 보니 환자들은 찜질방이나 민간요법 등에 매달리기도 한다.
김교수는 이 병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예후가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환자 스스로 단순한 부종으로 여기고, 침 부황 뜸 같은 민간요법을 받다가 피부화상을 입고 세균에 감염돼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패혈증이 생긴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팔다리의 부종을 감소시켜 생활에 지장이 없게 하고, 나아가 거동이 불가능 혹은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억제하는 게 치료목표"라고 말한다.
림프 부종 초기, 즉 피부가 말랑말랑하게 부어있으나 세균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에는 의료용 압박스타킹이나 압박붕대를 매게 하고, 팔다리를 올려 놓는 방법만으로 부기가 쉽게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림프부종 중기 즉 피부가 딱딱하고 거칠게 부어있고 수차례 세균 감염이 있었던 경우에는 전문의를 찾아가 기계적 압박기를 이용하거나 림프액 배출을 위한 특수 맛사지요법 등을 통해 고여있는 림프액을 인위적으로 빼주어야 한다. 남아있는 림프선 내에서 림프액이 원활히 흐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말기에 이르면 코끼리 다리처럼 팔다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심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는 보조적인 물리치료만으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조직절제술 같은 수술적 치료를 실시해야 한다.
yjsong@hk.co.kr
예방법
하지 정맥류
정상 체중을 유지하라 다리에 과도한 압력을 주지 않도록 정상 체중을 유지하라 다리를 꼬고 앉지 말라 장시간 서 있거나 앉아 있지 말라 30분마다 몸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라 허리나 사타구니를 너무 조이는 타이트한 옷은 피한다 고탄력 스타킹을 신어라 임신했을 때 하지정맥류가 나타냈다면, 출산 후 정상으로 회복했더라도 재발 가능성은 없는지 혈관외과 전문의에게 찾아가 반드시 체크하라
림프부종
수술받은 팔다리가 감염되지 않도록 채혈이나 주사를 금한다 수술받은 쪽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매지 않는다 수술 후 운동장애를 막기위해 걷기 수영 등 가벼운 운동을 시작한다 자궁암 수술을 받은 후 장시간 서있지 않도록 한다 피부를 깨끗이 유지하고 수술 부위에 자극성 없는 크림을 바른다 찜질방이나 사우나 이용은 당분간 삼간다 꽉끼는 옷이나 장갑은 피한다
/김동익 삼성서울병원 혈관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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