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청년들은 때가 되면 사춘기를 앓듯 아도르노를 앓는다. 아도르노라는 이름의 이 고열은 짧든 길든 그들 정신에 분명한 지문을 남기고서야 자리를 뜬다. "아도르노는 독일 모든 인문학도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황홀한 홍역이다." 철학자 오도 마크바트의 고백이다. 올 한해 독일 출판계의 빼어난 아도니스가 있다면 그는 바로 11월 9일 탄생 100주기를 맞았던 철학자 테오도르 비젠그룬드 아도르노이다. 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라는 악몽을 통해 건너서는 안될 야만의 강을 훌쩍 건너버린 전후 독일과 세계는, 한 예언자가 나타나 추문과 악의로 가득 찬 현 세계의 상(像) 앞에 그 어떤 팻말을 달아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때 등장한 것이 작은 키, 벗겨진 머리에 불안한 견인력으로 가득 찬 두 눈의 소유자인 '부정(否定)의 예언자' 아도르노였다."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이다."
"이념의 종착역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념의 종착역은 오직 지배이다. 지배라는 피비린내 나는 목표 앞에서 피조물은 단순한 재료에 불과하다."
그가 토해낸 이 잠언적이고 회의적인 선언들은 막스 호르크하이머와의 공저인 '계몽의 변증법'을 현대의 경전으로, 그의 체류지였던 프랑크푸르트 대학 제6강의실을 '신화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곳 청년들을 취하게 하는 아도르노의 향기이며 독은 아무래도 그의 무서운 연장인 언어이다. 그는 윤곽이 또렷하고 시퍼렇게 날이 선, 비늘이 번쩍이는 선도 높은 언어, 성적 요염과 금욕적 예언이 가차없이 뒤엉키는 신음적 언어들을 사용한다. 음악, 문학, 철학, 심리학을 거침없이 드나드는 이 전방위 지식인은 언어는 반드시 울려야만 한다는 음악적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알반베르크에게서 작곡과 피아노를 배운 음악비평가인 것을 알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음악보다 더 음악적인 그의 문장을 언어음악이라고 부른다. 탄생 100주기를 맞아 '마지막 천재'를 포함한 세 권의 아도르노 평전이 출간됐다. 그중 사회학자 스테판 뮐러돔의 평전은 총 1,302쪽에 각주만도 170쪽에 이르는, 문자로 적은 아도르노의 초상이다.
지금도 아도르노의 초기작 '최소한의 도덕―손상된 삶으로부터의 성찰'은 한해 1만5,000부씩 팔려나간다. 괴테, 칸트, 헤겔, 카프카, 베케트, 베토벤, 쇤베르크의 탁월한 해석자였고 마르쿠제, 블로흐, 발터 벤야민, 게오르그 루카치, 칼 포퍼, 토머스 만 같은 그리운 이름들의 친구이거나 논적이었던 그를 그의 제자들은 신동으로 태어나 부단한 열심과 억척 같은 노동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기어코 보존해 낸 기적의 사상가로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아도르노는 한 여자에게 보낸 연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아름다운 이여. 내가 이 지상에서 당신을 발견한 이 축복을 부디 용서하시길."
강 유 일 소설가 독일 라이프치히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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