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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옥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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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옥 만세

입력
2003.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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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발행·8,800원

조슬랭 시마르는 낮이면 엄마 마틸드와 함께 고철을 수집하고 밤이 되면 극장으로 달려가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맡는다. 소년은 극장에서 만난 소녀 마엘과 미친 듯이 사랑한다. 동유럽을 여행하던 아버지는 창녀 롤라와 사랑에 빠지고 남편의 배신에 분노한 마틸드는 아들과 함께 파리로 떠난다. 파리의 뒷골목을 떠돌다가 돌아와 마엘과 재회한 소년은 함께 공장에서 일하지만, 작업 중 사고를 당한 마엘은 공장에 불을 지르고 사라져 버린다. 소년은 연인을 찾아 런던으로 간다.

이 열다섯 살 소년의 길지 않은 얘기를 머리 속에 단단히 넣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의 첫 한두 장만 읽고서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지러워질 테니까. 프랑스의 젊은 작가 크리스토프 바타이유(33·사진)의 장편 '지옥 만세'는 이 몇 개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갑자기 어둠. 트럭 운전사의 아들, 나 조슬랭 시마르는 가발을 쓴 채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고, 뒤꿈치야! 지난 위대한 세기의 비단 스타킹 때문에 화끈거리는 다리, 핏기없는 목, 나는 장막을 걷는다. 무대다.' 조금만 참고 따라 읽으면 대화는 인용부호에 묶일 테고 이야기는 친절하게 풀려나오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라는 이름 앞에는 '프랑스 문학의 내일'이라는 수사가 놓인다. 최고 수재들이 진학한다는 명문 고등경영학교(HEC)를 졸업했지만 "정말 마음 깊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스물한 살에 발표한 첫 장편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카뮈의 '이방인' 이후 최고의 처녀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뛰어난 상상력과 천재성을 빛냈다. 네번째 장편 '지옥 만세'에 대해 프랑스 언론은 '매력적인 인물들이 사는, 바로크적이고 꿈 같은 세계를 창조했다'(르몽드), '이 소설은 당신이 읽는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엘르)는 찬사를 보냈다.

'지옥 만세'는 프랑스혁명 당시 민중들이 외쳤던 구호다. 귀족들의 천국에 대한 폭력의 부르짖음이었다. 바타이유가 부르짖는 '지옥 만세'는 기성의 소설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고 추악한 세계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다. 15세 소년이 소설의 마지막 런던에서 맞닥뜨린 광란의 '지옥'은 착하게 길들여진 세계에 맞서 봉기한 혁명이었고, 그 세계 아래 순하게 잠든 야성을 깨우려는 주문이었다. '나는 마신다 취한 조슬랭 tutto a te mi guida,(무아지경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 나는 런던을 즐겁게 해준다 사람들이 춤춘다, 내 입술에 와 닿는 입술들, 둘이 되어 셋이 되어 난 넘어진다, 금속 엉덩이, 즐긴다 침묵, 벌어진 비인간적인 입들.'

'지옥 만세'의 놀라운 매력은 무엇보다 문장의 힘에 있다. 독자의 입맛에 맞춘 단순한 이야기를 쓰는 작품에 맞서 그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언어와 문장으로 무장하고 온몸으로 소설을 밀고 나간다. 제 마음대로 춤을 추는 문장들의 향연은 낯설고 소란스럽고 광기로 들떠 있다. 지옥 같다. 상업적인 글쓰기에 대한 가혹한 조롱인 그 '언어의 지옥'이 숨이 찰 만큼 황홀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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