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나의 놀이터다!”지난달 30일 경기 부천시 중앙도서관 앞 레포츠 공원. 20대의 남자 4명과 여자 3명이 건물과 담장 사이를 부산하게 뛰어넘고 올라탄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엔 ‘무슨 짓 하는 거지?’라는 의아함이 가득하다.
벽 짚고 공중 한바퀴 돌기, 2층쯤 되는 건물 높이에서 새처럼 뛰어내리기, 건물 올라타기, 담장 뛰어넘기…. 도심 건물이 마치 서커스 무대라도 되는 듯이 곡예를 부린다. 바로 신종 레포츠인 야마카시 한국동호회의 모임이었다.
야마카시 상륙
모험과 스릴을 즐기기 위해 멀리 갈 것 없다. 이들에겐 바로 도심 속 건물들이 놀이터자 도전대상이다.
도심 엑스트림 레포츠 ‘야마카시(yamakasi)’가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다음이나 네이트 등 포탈사이트에 야마카시 동호회가 잇따라 개설되고, 회원수도 급속히 늘고 있다. 올 4월에 개설된 다음카페 ‘야마카시 한국동호회’(cafe.daum.net/yamakasikorea)는 회원수가 이달 들어 3,000명을 넘었다. 뤽 베송이 감독한 프랑스 영화 ‘야마카시’도 5일 국내에서 개봉되면서 ‘야마카시’ 바람에 불을 지필 태세다.
야마카시는 ‘초인’이란 뜻의 아프리카어로 사냥이나 전쟁을 할 때 구호로 사용됐던 말인데, 199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발생한 신종 레포츠의 이름에 붙여졌다.
프랑스를 시발로 해서 전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는 야마카시는 말하자면 ‘도심 속 타잔 놀이’다. 정글 속에서 뒹굴고 뛰어내리고 나무에 올라 이리저리 건너가는 타잔처럼 이들은 아무 장비도 없이 도심 건물을 누빈다. 각종 덤블링을 통해 담장을 뛰어넘고, 고층 건물을 오르고, 다른 건물로 점프해가면서. 건물이나 담장은 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애물이자 놀이 시설이다.
야마카시 한국동호회의 회장 김영민(27)씨는 “빌딩에 올라서면 한번쯤 뛰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누구나 느꼈을 것”이라며 “야마카시에는 도심 속에서 활개치고 싶은 꿈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삭막한 도심 속에서 놀이공간을 빼앗긴 현대인들의 모반의지와 원시적 본능이 이 놀이에 담겨있다는 것.
야마카시의 유래에서부터 그런 젊은이들의 욕구와 반항이 진하게 풍겨난다. 돈 없는 프랑스 뒷골목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며 놀까 궁리하다 떠올린 것이 건물을 타고 노는 것이었다. 아무 장비가 없는 것도 그 때문. 야마카시란 용어에도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많은 프랑스 빈민가의 삶이 녹아있다.
움트는 야마카시
국내에서는 프랑스를 여행하고 돌아온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올초부터 야마카시 동호회가 하나 둘 생겨났다. 여성 회원인 권윤형(24)씨는 “2001년 프랑스에 여행갔다가 야마카시란 영화를 본 후 잊지 못했는데 한국에서도 동호회가 생겨 너무 반가웠다”며 “여자지만, 담장을 붕붕 나르는 모습이 너무 멋져보여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의 야마카시 동호인들이 암벽등반을 하듯 고층건물을 쑥쑥 오르고 현란한 덤블링으로 빌딩 사이를 뛰어넘어 다니는 것에 비하면 국내는 이제 걸음마 단계. 본격적으로 도심 내에서 시도하지는 못하고, 주로 공원 내 건물에서 훈련을 쌓고 있다.
또 외국은 집과 집 사이가 좁아 지붕을 뛰어넘는 것이 가능하지만 국내는 사정이 달라 어려운 점도 있다. 때문에 야마카시는 각 나라의 환경에 맞게끔 동작이 변형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레포츠다. 김영민씨는 “다양한 야마카시 동작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아직 찾지 못했고, 국내에 갓 들어왔기 때문에 동작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형편”이라며 “좀더 활성화하면 우리나라의 건물 상황에 맞는 동작들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날 모임에서는 보기에도 아찔한 장면이 연신 펼쳐졌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벽을 타고 올라 한바퀴 공중제비를 돌거나 건물 2층 높이의 나무 위로 점프해 올라타기도 했다. 이전에 다른 운동을 했냐고 물었더니, 한 회원은 “그냥 깡으로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야마카시는 기계체조나 암벽등반, 무술에서의 낙법 등이 혼합된 성격을 가지긴 했지만, 회원들 대부분은 특출난 운동선수들이 아니다. 뛰고 즐기는 것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다. 김영수(25)씨는 “처음에는 발목 부근이 퉁퉁 부었지만, 지금은 왠만한 충격에도 끄덕 없이 단단해졌다”며 “점프해 뛰어내릴 때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자칫 다치지나 않을까 싶은 위험한 장면도 많았다. 가냘픈 몸매로 2층 난간에서 뛰어내린 여성회원 김희원(20)씨. 무섭지 않냐고 묻자 “좀 무섭기도 하지도, 그래도 이런 거 무지 좋아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당돌한 세대들. 그들은 자신을 내던지는 스릴과 모험에서, 멋과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야마카시 100배 즐기기
건물을 타고 노는 데서 출발한 야마카시가 레포츠화 하면서 일정한 룰을 가진 게임으로 발전했다. 무작정 건물이나 담장을 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3명 이상 모여 300m 정도의 계획된 동선 내에서 목표를 세운 다음, 각 동작을 달성해내는 것이 기본적인 게임 규칙이다.
어떤 담장을 타고, 어느 건물을 오른 뒤, 어떤 방식으로 뛰어내릴 것인가 등을 정한 다음 좀 더 멋지고, 화려하고, 대담한 동작으로 이를 달성하는 것이다. 각각의 동작 하나 하나가 그들 나름의 퍼포먼스다. 담장을 뛰어넘는 것에도 난이도와 예술성이 있다.
물론 아직은 정식으로 스포츠화한 수준은 아니지만, 야마카시의 원산지인 프랑스에서는 이를 좀 더 발전시켜 국제적인 야마카시 대회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한 구역 내에서 누가 더 멋진 동작들로 이뤄진 코스를 만들어내느냐를 다투는 것이다.
또 야마카시는 격렬하고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실제 경기는 물론이고 연습할 때도 혼자서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밤이나 비오는 날도 게임은 금지돼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장비가 없기 때문에 충분한 연습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폼나는 장면 하나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땀방울로 신체를 꾸준히 단련시켜야 한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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