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넘치는 고국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1975년 어머니가 눈물로 지어준 한복 한 벌과 고무신 한 켤레만 달랑 들고 파독(派獨) 간호사로 떠났던 김우자(63)씨. 33년만인 지난 7월 꿈에도 잊지 못하던 고국으로 영구 귀국한 그가 둥지를 튼 곳은 뜻밖에도 자신의 고향(경남 마산)이 아닌 경남 남해도의 '독일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남해군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해 97년부터 조성한 재독 동포들의 집단 귀향촌. 빨간 기와를 얹은 지붕의 각도가 45도로 가파른 독일식 주택 55채가 들어설 마을에는 이미 7가구가 입주를 마쳤고, 건축중인 18가구는 내년 말까지 모두 입주할 예정이다.마을 촌장을 맡은 김씨는 "쪽빛 바다와 눈부신 태양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게 바로 고국의 힘인 것 같다"고 말하지만 정작 영구귀국을 앞두고는 적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75년 결혼한 세무공무원 출신의 독일인 남편 스트라우스 김 루드빅(75)씨의 가족과 친구들의 반대가 컸던 것. 그러나 "아내가 독일로 건너와 33년을 살았으니 남은 여생은 마땅히 한국에서 보내는 것이 도리"라는 남편의 배려로 귀국이 성사됐다.
남편은 독일에서 20여년간 파독 간호사·광부들의 모임인 재독친목회장을 맡았던 '친한파'. 89년에는 친목회관을 건립해 교포들의 결혼식과 회갑잔치 장소로 제공하고 한국 예술인 초청공연을 매년 열어 왔다. 그래서인지 이들 부부는 계속해서 남은 생을 양국의 우호 증진에 바칠 것이라고 말한다.
"저는 물론이고 이 마을에 입주하는 교포들은 단순하게 여생을 즐기려고 고국 땅을 밟은 것이 아닙니다. 조국을 위해 저마다 맡은 분야에서 나름대로 마지막 봉사를 할 생각으로 돌아온 것이죠." 김씨는 또 "독일마을 주민은 광부나 간호사로 건너가 의사나 한의사가 된,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독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이들 부부는 마을 인근 '해오름 예술촌'이 마련해준 독일 와인문화회관에서 와인 설명회와 시음회를 주관하고, 매달 한차례씩 독일문화 세미나를 여는 등 '한국 속에 독일 심기'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또 주말에는 양로원과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편 독일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가이드 역까지 맡고 있다. 지난 7월 이후 독일마을을 찾은 독일인은 줄잡아 300명이 넘는다고. 남해군은 2006년까지 독일마을과 연계해 독일 생맥주와 와인, 소시지, 빵 등을 맛볼 수 있는 정통 독일식 선술집을 갖춘 독일문화의 거리와 전통 공예촌 등을 꾸며 이 일대를 관광명소로 개발할 계획이다.
김씨는 "마을 주민 모두 남해군의 따뜻한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관광 인프라가 구축되길 원한다"면서 "독일인들에게는 한국을 알리고 한국인들에게는 독일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장을 앞둔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활용하는 한편 후세들을 위해 무료 독일어 강좌 등 독일체험 프로그램을 개설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타국에서 눈물로 지새면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고국에 대한 향수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서의 힘들었던 삶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그의 소망은 단 하나. 독일어 방송국을 설립, 국내에 들어온 160개 독일기업체의 상사원과 독일인을 위한 독일어 방송을 하루 1∼2시간만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남해=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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