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인 여죄수들이 모인 시카고 교도소. 뉘우치기는커녕 뻔뻔하고 당당하게 ‘이렇게 만든 건 그들’이라며 노래한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감독 롭 마샬)는 ‘마초’ 남성이라면 뒤통수가 뻣뻣해질 ‘팜므 파탈’의 도발을 다루고 있다.
록시 하트(르네 젤웨거)는 남편 몰래 밀애를 즐기다가 애인을 죽이고 말지만 남편이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주리라 기대한다. 록시는 감옥에서 바람을 피운 자신의 동생과 남편을 죽이고 들어온 벨마(캐서린 제타 존스)를 만난다. 그녀는 바로 자신이 선망하는 뮤지컬 스타. 두 사람은 돈밖에 모르는 유능한 변호사 빌 플린(리처드 기어)에게 모든 것을 걸고 무대 위에 오를 날을 꿈꾼다.
미디어를 교묘히 이용하며 법의 심판을 빠져나가려는 악녀들의 분투기가 주 내용이지만 밥 포시가 안무한 관능적인 춤과 ‘올 댓 재즈’ 등 농염한 노래는 영화에 야릇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주름잡는 록시의 화려한 꿈 장면과, 모포 한 장 없는 냉랭한 교도소의 현실이 리듬감 있게 교차한다. 성적 매력의 육화라 할 캐서린 제타 존스부터 교도소 간수 ‘마마’로 나온 육중한 몸매의 퀸 라티파 등 온갖 ‘나쁜 여자’들이 벌이는 관능의 축제. 15세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물랭루즈
베르사체 셔츠를 입고 권총을 든 로미오가 나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바즈 루어만 감독. 강렬한 색채와 풍성한 사운드를 선보인 감독이 2001년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뮤지컬 ‘물랭루즈’(Moulin Rouge)의 연출을 맡은 것은 운명인지도 모른다.
19세기 말 파리 물랭루즈의 뮤지컬 가수 샤틴(니컬 키드먼)은 미모와 그에 걸맞은 야심을 가진 여자. 시만 읊어도 포만감을 느끼는 이상에 가득찬 시인 크리시티앙(이완 맥그리거)과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돈많은 공작의 유혹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존 레귀자모가 연기한 영화 속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환락의 공간, 물랭루즈는 영화에서 더 화려하다. 마돈나의 ‘Material Girl’, 엘튼 존의 ‘Your Song’, 스위트 ‘Love Is Like Oxygen’, 조 카커와 제니퍼 원스의 ‘Up Where We Belong’등 귀에 익은 화려한 팝 명곡을 통해 뮤지컬은 세련된 새 옷을 입는다.
감독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인을 통해 근대가 시작되기 직전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표현하려 했으나, 화려한 춤과 노래, 사랑 이야기에 묻혀 버렸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아깝지 않을 만큼, 125분의 쇼는 화려하다. 15세가.
/박은주기자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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