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식당에서 러시아 민요를 들은 적이 있다. 40∼50대 부부 10여명이 생일파티를 하는 듯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서너 명이 노래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의 합창이 되었고 춤으로도 이어졌다. 그들의 합창은 강물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그 노래에는 애환과 정열, 우수의 분위기가 뒤섞여 흐르는 듯했다. 옆 자리의 한국인 10여명에게는 뜻밖의 감동적 체험이었다. 아마추어들의 소박한 민요합창을 우연히 듣는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기회였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우리는 갈채를 보냈고, 어울려 춤도 추었다.■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에게 노래 요청이 왔다. '아리랑' 을 불렀으나, 더 합창할 노래를 찾기 어려웠다. 동요 '고향의 봄' 을 부르고 나서 손을 들었다. 부끄러웠다. 러시아인의 흥겨운 민요 부르기에 화답하지 못한 낯뜨거운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30∼50대였던 우리는 문화와 관련된 사람들이었고, 그 점이 더욱 자괴감을 주었다. 그날 우리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민족의 노래'를 잃어버린 미아였다. '트로트 세대'이거나 '팝송 세대', 혹은 정통음악으로부터 뿌리 뽑힌 세대였다. 민요와의 단절로 민족정서의 한 동맥이 끊긴 것이다.
■ 그날 차마 트로트를 부를 수는 없었다. 중학생 때 배운 포스터의 '오, 수재너' '올드 블랙 조' 정도는 합창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로트나 미국민요를 '민족의 노래'로 들려줄 수는 없었다. 개화기 이후 트로트가 도입되면서 우리 민요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지금 장년층에게는 트로트가, 청소년층에게는 댄스음악이 가장 익숙한 장르가 되어 있다. 또한 아일랜드·미국·독일민요 등에도 친숙하다. 그러면서 우리 민요를 개발하고, 가르치고, 부르는 데는 등한해 왔다. 균형 없는 문화정책과 음악교육이 한국인을 세계 속의 '민요치(癡)'로 만들어 버렸다.
■ 몇해 전 충북 박달재에 갔다가 '울고 넘는 박달재'를 두 시간 정도 신물 나게 들은 적이 있다. 최근 부여 낙화암에서도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로 시작되는 트로트 '백마강'을 반복해서 듣게 되었다. 흘러간 유행가들은 쉴 틈 없이 되풀이되며 사람을 지치게 했다. 명승지를 따라 유행가가 작곡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트로트를 즐기는 것도 각자의 취향이다. 그러나 트로트가 범람하면서 민요의 성장을 막고 민족음악처럼 돼 간다. 고속도로 휴게소부터 유명 관광지까지 트로트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적요 속에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싶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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