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경영위기에 빠진 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자본의 먹이감이 되고 있다.외국계 자본들이 비자금수사나 카드채 문제, 경영권 분쟁 등으로 우량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는 틈을 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막대한 차익을 챙기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주가 급락 노려
우량주 중심의 장기투자로 유명한 미국계 템플턴자산운용은 4일 계열 12개 펀드들이 지난달 25일 이후 LG카드 주식 1.03%를 추가 매입해 총 지분 5.39%를 확보했다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LG카드가 유동성 위기로 주가가 급락하고 국내투자자들이 투매하는 사이 템플턴은 오히려 보유 주식을 늘린 셈이다. 템플턴이 LG카드 주식을 사들인 시기는 채권단과 제2금융권이 2조원 자금지원과 만기연장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주가가 5,550원까지 급락한 시기여서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주식을 사들였다.
템플턴의 주식 추가 매입 이후 LG카드 주가는 국내외 매각기대감이 확산되면서 4일 장중 한때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8,560원까지 상승해 11월27일 최저가 대비 50%가량 반등했다. 이 같은 외국인의 주식 매입으로 LG카드의 외국인 지분율은 주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0%를 넘고 있다.
현대비자금·SK사태 학습효과
올 상반기 SK사태 때 SK(주)를 집중 매집한 소버린자산운용과 고 정몽헌 현대 회장 사망 후 현대엘리베이터를 사들인 미국계 GMO펀드, 대북송금 특검과 현대 비자금수사 때 현대상선 주식을 사들인 외국계 투자가들이 모두 고수익을 올리면서 국내 기업의 위기를 '사냥' 기회로 활용하는 사례는 시장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일반 개인투자자들은 각종 비리사건 수사나 금융비리 소식에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큰일 났다'는 공포 분위기에 휩쓸려 투매에 나서지만, 자금력이 좋고 기업가치 분석에 정통한 외국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량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 막대한 수익을 내곤 한다.
올 8월이후 현대엘리베이터주식 8.4%를 매집했던 미국계 GMO이머징마켓펀드는 장기투자 펀드라는 시장 인식과는 달리 현대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지분을 3개월 만에 모두 팔아 150억원에 가까운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SK의 2대 주주로 올라선 소버린도 당초 약속한 지배구조개선 보다는 주가 올리기에 연연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국내 기관 역할 높여야
이처럼 국내 기업의 지분 관리가 위기에 취약한 것은 선진국에선 특수한 상황으로 시장에 공포가 생겼을 때 이를 투자 기회로 활용하는 '패닉 인베스트먼트(Panic Investment)'가 발달한데 반해 이를 방어해야 하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은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 제일투자증권 김정래 투신법인 리서치팀장은 "외국인이 역발상 투자로 수익을 많이 낸다는 것은 국내 기업과 금융 체계, 나아가 시장환경과 국가시스템이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증거"라며 "국내 기관 투자가의 기반을 육성하고 기업이 경영외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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