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죽은 오라버니의 명예를 회복해준 재판부에 감사드립니다."한국전쟁 때 사형당한 오빠 고(故) 허지홍 대위(육사5기)의 명예회복에 나서 53년 만에 법원으로부터 공소기각 판결을 받아낸 여동생 덕수(72·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씨는 평생의 한을 눈물로 쏟아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합의1부(이충상 부장판사)는 3일 한국전쟁 중 적전 비행 및 군기문란 죄로 사형된 허 대위에 대한 재심청구사건 선고공판에서 이례적으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덕수씨가 오빠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은 의문사를 다룬 한 TV프로그램을 본 1999년. 죄인처럼 평생을 숨죽이던 그녀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전쟁기념관 등을 발이 닳도록 오가며 자료를 수집했다.
덕수씨는 육군본부가 보관하고 있는 인사기록(거주표)에 판결내용이 없고 '실종으로 보고됐으나 사실은 사망임. 정식보고는 없음'이라는 기록을 찾아냈다. 수소문 끝에 당시 허 대위 소속 연대 장교 이상환씨로부터 "허 대위의 범행을 목격하거나 들은 적이 없고 허 대위가 조사나 심문을 받은 적도 없다"는 증언도 받아냈다.
덕수씨는 모은 자료를 토대로 2000년 청와대 등에 민원을 넣고 육군보통군법회의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은 백발의 노인이 견디기엔 복잡하고 모질었다. 그녀는 보통군법회의 기각―고등군법회의 항고―보통군법회의 파기환송―일반법원 이송―재심 개시결정―공판―선고 절차 등 3년 동안이나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그녀의 정성은 마침내 재판부를 움직였다. 당시 군사법원 판결문 등엔 허 대위가 1950년 8월7일 육군 모 군단 대대장으로 안동지구 향로봉 전투에서 공격명령을 받고도 부대를 이탈해 후퇴한 혐의로 같은 달 17일 사형선고를 받고 나흘 후 형이 집행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에게 사형판결을 내린 육군 모 군단 고등군법회의는 실제 열리지 않았고 판결문과 심사관련 서류 역시 피고인을 즉결 처분한 후 조작됐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허 대위의 혐의가 사실상 무죄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검찰의 항소가 없는 한 법적 절차를 거쳐 국가로부터 보상과 국가유공자 대우 등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덕수씨는 "이제 오빠와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했으니 도와준 분들과 상의해 보상 및 국가유공자 신청절차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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