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막한 도쿄 모터쇼에서는 환경을 생각하는 기술인 '에코'를 내세운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가 일본인들은 물론 외국인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불황 때는 움츠러드는 게 보통인데 일본 자동차업계는 환경 친화적인 차세대 기술을 새로운 게임의 동력으로 삼아 다시 한 번 세계 자동차 시장의 경쟁을 주도할 태세다. 이와 함께 일본은 1일부터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화를 시작했다. 하이 비전에 사활을 걸고 연구를 거듭해 온 NHK로서는 하이 비전의 세계 규격화 실패로 큰 좌절을 맞본 뒤 눈물을 머금고 단행한 변화였다.성공과 실패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기술 개발에 대한 야심은 지금까지 일본 기업들이 낸 수많은 특허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신기술 개발은 일본의 강점이며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일본인 특유의 '키와메루' 정신이 존재한다. 무슨 일을 한 번 시작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끝장을 볼 때까지 매달린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지'라는 것이 있다. 언뜻 한국의 '하면 된다'와 비슷한 것 같지만, 일본의 경우 '무조건 시작하고 나서 생각하자'가 아니라 시작하기 전에 검토나 연구를 철저히 한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고 느리다. 아시아 최고 경제 강대국인 일본의 인터넷 보급률이 한국보다 한참 떨어져 50%를 넘지 않는 것도 문화자본 등에 관한 저작권 관련 법률제정이나 명예훼손 등 인터넷 보급과 함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의 해결책을 미리 검토하고 정리하고 싶어하는 신중론이 주된 이유다.
이는 일본식 학풍에서도 느낄 수 있다. 내 지도교수를 비롯한 일본 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 전에 자료수집과 정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평생, 아니 세대가 바뀌도록 지속한다. 그 과정은 때로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안정지향적이며 새 것에 둔감해 보이는 일본이 한 번씩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을 내보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내 단골 미용사인 야마다상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35세로 미혼인 그는 고교 졸업 직후 미용계에 발을 들여 지금은 미장원에서 가장 단골이 많다. 하지만 지금도 17년간 모아둔 헤어 스타일의 유행 자료를 가지고 새내기 연수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같이 연습도 한다. 베테랑인 그녀가 아직 커트를 연습한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결혼보다 자신이 개발한 커트가 대 히트하는 것이 더 큰 소망이라는 말에 납득하고 말았다.
반복된 연구는 창조를 낳는다. 어떻게 보면 모순적이라 할 이 말을 굳게 믿고 있는 고집 센 거북이. 이것이 바로 일본이다.
김 상 미 일본/도쿄대 박사과정·'한국N세대백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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