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유복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그 세대의 양갓집 딸이 대개 그랬듯 교양을 위해 그림 공부를 했고, 현모양처가 되려고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청년 실업가와 결혼했고, 시부모를 모시고 세 아이를 낳아 키우느라 정신 없는 아줌마의 나날을 보냈다.사춘기와 대학 시절에 자극받은 미적 감성이 가슴 속에 남았지만 창작에 나설 정도는 아니었다. 대신 틈틈이 미술관과 화랑을 찾았다. 주변의 다른 '강남 아줌마'가 아파트를 사 들이느라고 바쁠 때 그는 조금씩 그림을 사 모았다. 국내 출신 대가의 유화가 중심이었다. 투자를 한다는 뚜렷한 의식은 없었지만 우선 그림이 좋았고, 사 두면 손해를 보진 않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사 모은 그림이 거의 10배로 값이 뛰었을 때 그는 하나하나 그림을 팔았고, 그 돈으로 이번에는 해외 중견 작가들의 그림을 사 모았다. 그 그림들은 이미 값이 오를 대로 오른 국내 유명작가의 작품보다 훨씬 빠르게 값이 치솟았다. 그 덕분에 그는 어느날 아줌마에서 화랑 주인으로 변신했다. 별 재미는 보지 못했지만 그 동안의 미술품 수집이 워낙 성공적이어서 화랑 운영에는 어려움이 없다.
해외 미술시장 동향을 부지런히 살펴야 하기 때문에 해외 나들이가 잦아진 것을 제외하고 특별히 화랑을 열기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마음에 드는 미술품이 있으면 사고,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파는 기본 틀은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긴 있다. 수집한 그림을 팔아 웬만한 사람이 들으면 놀라서 입이 벌어질 정도로 많은 이익을 냈을 때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업자로서 소득세를 낸다. 그 정도는 화랑 수수료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1990년 도입되고도 유예돼 온 '미술품 양도소득세'가 내년 1월 시행에 들어간다. '미술품 양도소득세' 부과 등을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지난달 20일 국회 재경위를 통과했다. 잠자던 국회가 4일부터 정상화하면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 확실하다. 미술계는 협소한 국내 미술시장의 현실을 들어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고, 정부와 국회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으로 이에 맞서고 있다.
13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양측의 줄다리기를 보노라면 정말 세월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품 양도소득세'는 이미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다. 생존 작가의 작품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고, 세율도 애초의 9∼36%에서 1%로 낮아져 이름만 남았다. 미술계의 반발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인의 미술품 구입을 손비 처리해 주는 등의 미술시장 육성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금을 얼마나 내느냐가 아니라 세원 노출 자체를 꺼리는 현실상 미술품 거래의 음성화와 시장 위축을 피하기 어렵다는 미술계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허송세월은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여건 조성의 중요한 요소인 미술품 거래 투명화 등에서 어떤 성과를 쌓아 왔는지 의심스럽다.
그 결과 곧 시행될 미술품 양도소득세는 조세 형평의 원칙과 동떨어질 뿐 아니라 현실적 세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고, 투명한 미술품 거래관행 확립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시장에 심리적 부담을 지울 것으로 보인다. 조세 형평의 원칙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별도의 지원책으로 미술시장을 실질적으로 육성하는 법제·정책 검토에 양측이 지혜를 모을 수는 없는가.
황 영 식 문화부장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