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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아주 아까운 문장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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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아주 아까운 문장 하나

입력
2003.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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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여간해서는 밑줄을 긋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우리시대의 처사 김훈이 쓴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을 읽으며 여러 군데 밑줄을 그었다.'여자들의 젖가슴이란 그 주인인 각자의 것이고 그 애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신라금관이나 고려청자나 백제 금동향로보다 더 소중한 겨레의 보물이며 자랑거리다. 이 생명의 국보들은 새로운 삶을 향한 충동으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게 해준다. 그런데 이 착한 젖가슴들을 죄다 곪아터지게 만든 실리콘이라는 물건은 미국 기업이 온 세계 여자들한테 팔아먹은 것이라고 한다. 제 나라 여자들 젖가슴이 이토록 곪아서 문드러지도록 정부는 대체 무얼 했단 말인가?'

처사와 만나 술 한잔 나누는 자리에서 밑줄 얘기를 했다. 처사는 순정하고도 순정한 얼굴로 처음 원고를 쓸 땐 '겨레의 보물이며 자랑이자 통일의 원동력'이라고 썼는데, '통일의 원동력' 부분은 너무 지나친 것 같아 뺐다고 말했다. 나는 탄식처럼 이렇게 화답했다. "그걸 왜 뺍니까? 앞으로 통일 세대를 먹이고 안아서 키우는 젖가슴이니 통일의 원동력이라고 써도 조금도 지나침이 없지요." 우리는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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