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 드드드드드(너, 혀 짧지?). 최지우: 대대대대대(아냐, 네가 더 짧어!)' 발음 안되기로 유명한 권상우와 최지우가 SBS 새 수목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나란히 주인공을 맡은 것을 비꼰 인터넷 유머(?)다. '스타'일지언정 '연기자'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최지우는 특히 발음과 관련된 가슴 아픈 사연이 많다. 이병헌과 호흡을 맞춘 '아름다운 날들'(2001년)에서 그가 시도 때도 없이 내뱉던 '실땅님(실장님)' 소리는 요즘도 심심찮게 개그 소재로 등장한다. 그는 드라마 방송에 앞서 지난달 가진 인터뷰에서 "놀림을 당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남들이 그걸 흉내 내는 걸 보면 때려 주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발음 나쁜 건 연기자로서는 치명적 약점인 만큼 이 정도 욕 먹는 건 약과다.
요즘에는 눈 밝고, 귀 밝은 시청자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예전 같으면 애교로 봐줄 만한 조그만 실수도 좀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더구나 처음에는 '뿅망치' 처럼 부드럽던 애정 어린 비판도 인터넷을 돌다 보면, 어느새 '쇠망치'가 돼 뒤통수를 내리친다. 연예인 사이에서 "시청자가 무섭다"는 한탄이 절로 나올 법하다.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것은 일부 연예인만이 아니다. '꿈의 시청률'이라는 50%를 넘기며 승승장구하는 MBC '대장금'도 시청자들의 '옥에 티' 지적과 표절 의혹 제기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이병훈 PD가 인터넷 게시판에 사과와 해명의 글을 남겼지만, 시청자의 감시와 질타는 요즘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한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만난 이정길은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재미난 일화를 들려줬다. "제가 40대 초반까지 무려 15년을 줄곧 멜로드라마 주인공을 했어요. 마흔 다섯 때인가 또 멜로 섭외를 받았는데 극중 나이가 스물 일곱이래요. 제가 고민하니까 PD는 '연기력으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했지요. 한 스포츠신문이 'MBC는 이정길 밖에 없나' 하고 기사를 쓰지만 않았어도 했을 겁니다. 그 때만 해도 (시청자들도) 그럭저럭 눈감아 줬으니…."
그의 말처럼 "요즘 같으면 가당치도 않을 일"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톱스타도 아이 낳고 아줌마 된 뒤 처녀 역을 맡으려면 욕 먹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는 세상이다.
시청자들이 쏟아내는 비판에는 지나친 인신공격, 근거 없는 비난도 없지 않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연기자들의 자질과 노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잘 나가는 젊은 연예인들 가운데 '연기자'로 불리기에 부끄러움 없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정말 속 상해요"라고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요즘 시청자들 정말 무섭다. 그리고 앞으론 더욱 무서워질 것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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