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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느끼지" 않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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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느끼지" 않는 아이들

입력
2003.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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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물감놀이를 하던 아내가 요즘 학교 미술 시간에는 '알기'만 있고 '느끼기'가 없다는 푸념을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교탁 위에 농익은 과일들을 펼쳐놓고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가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할 사이도 없이 그림 그리기에만 바쁘다가 종소리를 듣곤 했다.느끼지 않는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도 여섯살배기 딸아이와 과일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무슨 색깔인지,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 얘기한 적은 있어도 예쁜지 미운지, 맛과 냄새가 어떤지,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이 드는지를 얘기해 본 기억이 없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지난 달 신입 PD 선발과정에 참여했다. '인생에서 영혼의 떨림을 느꼈던 순간을 드라마적으로 기술하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수험자들의 답은 대동소이했다. 느끼지 않고 자란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당연한 결과이다.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는 아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말도 배우기 전에 그림책으로 '알기' 연습을 시작해서 말을 익히자마자 '알기' 연습에 몰두하는 아이들. 박수 치며 환호하는 엄마, 아빠의 응원에 힘입은 끊임없는 '알기' 학습으로 사물의 이름과 크기와 빛깔과 숫자 놀음에는 익숙하다. '알기'에 강하고 '느끼기'에 약한 교육 체험, 문명에 익숙하고 문화에 서툰 사회 체험이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가슴보다 머리가 먼저 가게 만들고 있다. 며칠 뒤 딸아이와 발레 공연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가슴 속의 작은 떨림을 아이와 함께 느끼고 얘기하면서 멋진 데이트를 즐길 생각이다.

이 재 규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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