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일 이라크 내 한국인 피살사건의 상황을 파악하느라 긴박하게 움직이면서도 이 사건이 파병 찬반여론에 미칠 영향에 귀를 쫑긋 세운 모습이다.노무현 대통령은 31일 밤 11시, 그리고 1일 오전 5시30분 등 2차례에 걸쳐 이종석 NSC 사무차장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전화보고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고건 국무총리와 문희상 비서실장,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 윤영관 외교·조영길 국방장관 등 관계 장관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직접 대처방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민간인에 대한 테러는 용납할 수 없는 비인도적 행위"라고 규탄한 뒤, NSC 상임위를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라 국가보좌관 주재로 열린 NSC 상임위 회의에서는 이 사건을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와 연계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정리됐다. 한국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결론을 일단 유보키로 했다.
그러나 NSC 사무처는 이번 테러가 한국인을 겨냥한 계획적이고 의도적 테러이며, 따라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추가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1일 전날 발생한 이라크 현지에서의 한국인 피살 사건에 대한 수습책을 마련하느라 온종일 긴박하게 움직였다. 외교부는 그러나 이번에 변을 당한 오무전기 직원 67명이 이라크에 머물러 있었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에둘러 해명하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당초 예정됐던 실·국장 회의 대신 장관 주재 하에 차관보와 북미국장, 아중동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진상파악과 교민보호 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손세주 주이라크 대리대사를 사고 현장인 티크리트로 급파해 사상자 송환작업에 나서도록 하는 한편 심의관급 고위관리를 현지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또 홈페이지 게시판과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이라크 여행 금지를 권고하는 한편 대사관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기업체 필수직원을 제외하고 이라크에 체류중인 기업인과 선교사,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에게 빠른 시일 내에 출국할 것을 요청했다.
국방부에서는 치안유지 및 경계를 담당할 병력(전투병)의 충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일로 파병부대의 성격 등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예단할 수 없다"면서도 "파병부대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부가 기존의 특수전사령부(특전사) 1개 여단 파병방안을 재검토, 전투병 비율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을지 주목되고 있다.
군 내에서는 '지역치안을 맡아도 현지 경찰과 군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라'는 대통령의 파병지침이 나온 이후에도 치안유지군의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돼왔다. 독자적인 지휘권을 행사하는 지역책임군으로 파병해야 미국의 요청에도 부합할 뿐 아니라 우리군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군은 물론 자기방어에 취약한 민간인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공병 중심의 기능부대를 보내는 방안은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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