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유머를 결합한 흔치 않은 만화가 나왔다. 젊은 만화가 김태권(29·사진)씨가 낸 '십자군이야기1―충격과 공포'(길찾기)는 중세 유럽이 이슬람세계를 공격한 십자군 전쟁을 미국이 감행한 이라크 전쟁과 비교하면서 전문적 역사지식과 짭짤한 유머를 섞은 만화다.김씨는 "무지와 편견이 어떻게 전쟁으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창작 동기를 밝혔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고 차이점만을 부각해 전쟁에 이른 것이 꼭 십자군 전쟁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만화로 그렸지요."
그는 관련 역사서와 자료를 두 트렁크 분량이나 섭렵해서 역사적 사실을 만화에 담았다. 전쟁 초기 십자군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유럽 땅 이곳 저곳에서 "여기가 예루살렘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또 터키 땅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이슬람인으로 착각해 살육하기도 했다. 그 만큼 이슬람세계에 대해 무지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이와 비슷한 무지를 찾아냈다. "사이비종교의 이름을 걸고 살인을 저지르다니!"(2002.8.1) 그런데 이슬람의 경전 코란에는 "우리(무슬림)의 신과 너희(기독교도)의 신은 같은 한 분의 신이시니, 우리는 그 분께 순종함이라"라고 씌어있다.
만화는 1095년 정신이 약간 나간 은자 피에르가 친구이기도 한 '부시'라는 이름의 나귀를 타고 이교도의 손에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검은 승용차에 납치돼 TV에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일약 유럽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너도나도 전쟁에 동참한다.
그러나 이 전쟁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교황청의 권력강화를 위해 감행한 것이었다. 작가는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 공화당 매파의 위상이 강화됐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피에르는 프랑스 아미엥 태생의 역사상 실존 인물이다.
당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중세 기도서나 판화, 연대기의 삽화를 닮은 그림체를 택한 것도 이 만화의 독특한 점이다. 십자군 병사들은 로마네스크 양식, 이슬람 병사들은 비잔틴 양식으로 그렸다. 샤를마뉴 대제의 수염을 프랑크 왕국의 왕이었을 때는 콧수염, 서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한 후에는 구레나룻으로 그릴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2,3차 십자군은 고딕 양식으로 그릴 작정이다.
1권은 1차 십자군 전에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군중십자군'이 베오그라드에서 주민 4,000명을 학살하는 등 가는 곳마다 약탈을 하다가 터키에서 전멸할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모두 6권으로 완성할 예정이다. 참고문헌과 연표를 책 뒤에 붙였다.
김씨는 "시오노 나나미 식의 책을 통해 '로마는 문명인이고 전쟁을 통해 주변의 야만인을 문명화했다'는 시각이 침투해 있는데 십자군 전쟁과 이라크 전쟁도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 교지와 사회과학 서평지에 시사만화를 게재하면서 만화와 인연을 맺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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