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너무 한다 싶어서 책을 내긴 했지만, 제 꿈은 따로 있어요. 이 책으로 과거를 털고, 가수 활동도 다시 시작해서 잘 되면 나중에 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싶습니다. 언어 장애가 있는 막내 아들을 키우며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고통을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펄시스터스'의 멤버였던 배인순(55)씨가 자전소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을 내자 사람들은 그것이 전 남편인 동아그룹 최원석 전 회장에 대한 복수이자, 책을 팔려는 장삿속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11월 중순에 발간된 책은 10만부를 금세 넘었고, 요즘도 하루 5,000권 정도 나가고 있다.이혼하면서 두고 온 아이들과 전 남편의 갈등은 오랜 망설임을 접고 책을 세상에 내놓은 가장 큰 이유가 됐다. 큰아들은 6월 결혼 후 유학을 떠났지만, 공익근무요원인 둘째(27)와 아직 대학에 다니는 막내(24)가 늘 마음에 걸렸다. 그 때문에 오래 전부터 써 온 일기를 정리한 책을 준비해 놓고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가 TV에 나가 '과거사' 일부를 털어 놓자 "전 남편이 두 아들의 용돈을 끊는 등 아이들에게 너무 섭섭하게" 한 것이 '결단'의 직접적 계기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들 문제로 겪는 고통마저 이제는 업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도 남의 자식을 키워봤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최 회장에게는 20대 초반 한 여배우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있더군요. 하느라고 했지만,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사춘기 딸에게 제가 뭘 얼마나 잘 했겠어요. 끊임 없이 바람 피우는 남편, 책 잡기에 바쁜 시어머니와 시누이 틈에서 나 살기에 바빠서…. 그 때 엄마 노릇 제대로 못 한 죄값을 지금 치르고 있나 봐요."
하지만 최 전 회장의 현재 부인(아나운서 출신 장은영씨)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아무리 미워도 부모가 돼서 아이들이 뭘 먹고 있는지, 뭘 하고 사는지 도통 돌아다 보지를 않네요. (최 전회장 집의 뒷집에 살고 있는 두 아들에게) 제가 매일 아침 우유 빵 요구르트 같은 걸 사서 보내줘야 할 정도입니다." 그는 "심한 말도 뱉고 싶지만 꾹 참는 것"이라며 "똑똑하고 현명한 여자일텐데, 설사 아버지가 아이들을 미워하더라도 할 도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과거에 얽매여 살 수는 없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막내 아들을 키우며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막내가 아니었으면 내가 참 교만한 사람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기 스타로도 살았고, 재벌 총수의 아내로도 살았어요. 이혼하고 카페 열기까지 사기도, 이용도 당했지만 그래도 이만큼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은 다 막내를 키우며 배운 거죠. 앞으로는 더욱 마음 다잡고 남들에게 베풀며 살고 싶습니다." 언어장애가 있는 막내 아들 때문에 "유명하다는 언어 학교란 학교는 모두 찾아 다녔다"는 그는 이제 아들이 학교 생활을 문제없이 할 정도가 됐고, 대학원에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는 최 전 회장과의 결혼을 '운명의 장난'이었다고 회고했다. 노래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펄시스터즈는 뉴욕에서 'Tie A Yellow Ribbon Around The Oak Tree'로 유명한 프로듀서를 만나 녹음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약속 날짜에서 3주가 넘도록 연락이 없었고, 때마침 최 전 회장의 청혼을 받아 결혼을 결정했다. "가수로서 실력이 없나 보다 하고 실망했고, 제대로 된 가수가 될 수 없을 바엔 결혼을 하자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연락처를 잃어버려 한참 연락을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혼 직후 수년 간의 결혼생활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며 넌더리를 치던 그의 뇌리에는 '좋았던 옛날' 최 전 회장의 모습도 담겨 있는 듯했다. "남자로서는 매력적인 사람이지요. 잘 생겼고, 재력을 떠나 카리스마도 있고, 잘 해 줄 때는 정말 잘 해 주지요. 여자에게 돈 잘 쓰는 걸로도 유명하니까 여자들이 좋아할 수밖에요. 다만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는 게 문제예요. 남들은 밖에서 여자들과 놀더라도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고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 때마다 무작정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가정이 온전할 수가 없지요."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말이 앞서면 안 되는데 자꾸 기자들을 만나면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된다"는 배씨는 '좋은 가사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며 '가수 배인순'으로 작사가를 만나러 카페 '데이트'를 서둘러 나섰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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