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공직비리, 정부는 뭐하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공직비리, 정부는 뭐하나

입력
2003.12.02 00:00
0 0

"하도 자주 받다 보니 언제, 누구로부터 무슨 명목으로 받은 것인지 모르겠다."최근 불거져 나온 한 울산시 공무원의 비리행태는 아무리 청백리(淸白吏)가 '천연기념물'이 된 세상이라지만 해도 너무했다 싶다.

울산지검 특수부가 지난달 20일 밝혀낸 '수뢰일기'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1998년9월 울산시 종합건설본부에 전입해온 6급공무원 노모(46)씨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뇌물통장'으로 사용할 차명계좌를 개설한 일이었다. 노씨는 이후 관급공사를 수주한 업자들로부터 뇌물을 수금해 통장에 차곡차곡 쌓아두기 시작했다. 담당검사에 따르면 노씨는 거의 매일 돈을 거뒀고 이 덕에 뇌물통장에는 매월 자신의 월급보다 6배이상 많은 평균 2,000여만원이 입금됐다.

노씨는 이 과정에서 업자들에게 "현금으로만 인사하라"는 상납지침까지 고지했다. 처음에는 갖다 주는 돈만 챙기던 노씨는 점차 배포가 커진 듯 울산 이외지역 업자들이 공사를 수주할 경우 서울, 부산 등지로까지 찾아가 '원정수수'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비리종합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노씨의 비리행각이 2001년 6월 동료공무원들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별탈 없이 지속돼왔다는 점이다. 노씨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철저하게 "현금만을 받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데 보다 신경을 썼을 뿐이었다.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들의 '비리열전'은 비단 노씨사건 뿐 아니다. 지난달 4일 경기 남양주시청 야외주차장에서는 양주시 김모(44) 과장이 민원인으로부터 보석함을 넘겨받아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넣으려다 잠복중이던 정부합동점검반원에게 적발됐다. 김 과장의 승용차 트렁크를 열어본 점검반원들은 현금 1,700만원이 들어있는 손가방을 찾아내곤 아연실색했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수사에 나선 검찰수사관은 김씨의 차 트렁크 밑바닥에서 현금 600만원이 든 또 다른 돈가방을 찾아냈다. 또한 지난달 27일 전북도청 제2청사 구내식당에서 농림수산국 권모(44)씨가 현금 470만원을 받다 역시 총리실 암행감찰반원에게 적발됐다.

공무원들이 이같이 일수찍듯 뒷돈을 챙겨 뇌물통장을 살찌우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현금다발을 트렁크에 넣고 다니고, 도청 구내식당에서 뇌물을 먹어치우는 비리가 일상사처럼 저질러지고 있는데도 정작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기껏 부패방지위원회의 위상강화니, 암행감찰의 활성화 방안 등을 내놓았지만 도둑고양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검의 범죄분석에 따르면 2001년 직무관련 범죄로 입건된 공무원은 1,076명으로 97년의 530명에 비해 2배가 늘었다. 이 같은 현실에서 국제투명성기구(TI)가 올해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리나라가 전세계 130개국중 50위를 차지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해야 할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작 중요한 행정시스템 개혁이나 공직자 비리근절 대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정치적 이해득실에만 매달리고 있다. 거대 야당대표는 새해 예산안 심의를 팽개쳐둔 채 특검관철을 위한 단식농성을 벌이는 가하면 다른 정파들도 내년 총선이라는 잿밥에만 눈이 어두운 채 소모적 정쟁에 함몰돼 있다.

이처럼 정부와 정치권이 오로지 정권투쟁이라는 하드웨어에 '올인 게임'을 하는 와중에 한 국가의 소프트 웨어라 할 공무원조직은 총체적으로 썩어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나라를 송두리째 좀 먹는 공직자비리 척결에도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윤 승 용 사회1부장syy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