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는데…" "가지 말라고 좀더 말렸더라면…."이라크에서 피습된 한인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이 최종 확인된 1일 가족들은 충격과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오열했다. 이라크 현지로 직원 68명을 파견했다 변을 당한 오무전기측과 이라크 재건 수주팀을 보낸 회사들도 현지사정을 파악하느라 온 종일 분주했다.
숨진 곽경해(60·대전 유성구 방동)씨의 아들 민호(33)씨는 "출국 전날인 지난달 27일에도 아버지께 '연세도 있으시니 그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가게 하고 편히 계시라'고 극구 만류했으나 '전쟁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며 "아버지의 뜻을 꺾지 못한 게 한이다"고 통곡했다. 아내 (56)와 딸(27)은 "아직 정부나 회사측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지 않았다"며 곽씨의 사망 소식을 극구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이 마당에 서둘러 차린 젯상에는 곽씨가 생전에 즐겨 입던 와이셔츠와 뒷굽이 닳은 구두 등이 밥과 동전 등과 올려져 이웃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고향 선배인 이원배(73)씨는 "돈을 벌겠다며 20대에 고향을 떠났다가 40년 만인 지난해 귀향, 아담한 집을 지어 모두가 축하했는데 이런 끔찍한 일이 생겨 주민들이 모두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흐느꼈다.
또 다른 사망자 김만수(46·대전 서구 삼천동)씨도 대전에서 전기사업을 하던 중견업자로 곽씨와 함께 이라크로 출국한 뒤 참변을 당했다. 김씨의 가족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아파트 문은 굳게 닫고 외부와의 접촉을 삼갔다. 그러나 수능시험을 치른 김씨의 쌍둥이 딸들은 등교를 미룬 채 "아빠"를 불러대며 울음바다를 이뤘다. 김씨의 아내 김태연(43)씨는 "아침에 TV뉴스를 보다가 남편의 사고소식을 처음 접했다"며 "오무전기에서 오전 9시30분께 뒤늦게 사고소식을 간단히 알려줬을 뿐 하루 종일 전화를 받지 않다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겨우 통화를 했다"고 성토했다. 가족들은 "외교통상부에서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시신 수습밖에 없다'는 식의 말만 했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부측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며 분노했다.
부상당한 이상원(42·대전 대덕구 신탄진동)씨의 아내 문모(38)씨는 "오후 2시께 남편이 집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와 '이라크 현지에서 무사히 수술을 받고 독일 병원으로 후송됐으니 안심하라'고 말했지만 귀국할 때까지는 맘을 놓지 못하겠다"며 긴장을 풀지 못했다.
다행히 경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 임재석(32·전남 목포시 용해동)씨의 부인 노애순(31)씨는 "어젯밤 11시께 남편으로부터 '다리에 총상을 입었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한 1주일 치료를 받고 바로 귀국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한숨을 돌린 표정이었다.
한편 서울 구로동 오무전기 본사 사무실은 새벽 1시부터 회사관계자 4, 5명이 나와 비상근무를 섰으며, 날이 밝자 취재진과 유족들이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대전=허택회기자 thheo@hk.co.kr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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