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 국내 금융기관을 모조리 쓸어가면서 금융계가 위기감에 떨고 있다. 리딩뱅크 수장인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최근 "외국 펀드에 이어 세계적인 외국은행이 국내 은행을 인수하면 큰 일이 난다"고 걱정했고, 우리금융그룹을 지키기 위해 토종 펀드를 모집해 '외자(外資) 대항마'로 키우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외자에 의한 '금융주권(主權)' 상실과 경제치안 붕괴를 우려하는 세미나도 열렸다.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경제부총리, 금융감독위원장 등 경제 수장들은 이에 대한 입장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이나 우리금융, 부실 투신사들을 언제까지 팔겠다는 얘기만 할 뿐 어떤 밑그림을 가지고 민영화를 해나갈 것인지, 그 철학과 비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물론 개방시대에 금융 민족주의를 주장하고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국내 금융은 (외자에 의해) 까무러칠 정도의 '빅뱅'을 겪어야만 정신을 차릴 수 있다"는 '개방 대세론'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쪽이 옳으냐를 떠나 정부가 시장의 들끓는 걱정을 외면한 채 민영화 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않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을 무조건 빨리 내다 팔기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마치 2∼3년전 은행 대형화가 지상 과제인 양 외치던 정부가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처럼 정부의 금융산업 정책은 단편적이고 갈수록 깊이가 없어지는 것 같다.
다음 주면 우리나라의 '동북아 금융중심 로드맵'이 확정된다는데, 금융산업에 대한 청사진조차 없는 정부가 과연 한국을 어떻게 동북아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남대희 경제부 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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