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노후 보장'을 슬로건으로 내건 국민연금이 위기를 맞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이 낸 연금으로 TV 광고까지 대대적으로 하면서 연금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매달 수입에서 떼어가는 국민연금이 세금과 다른 점은 나중에 돌려준다는 것 뿐인데 이제 보니 약속한 만큼 돌려주지 못하게 된 모양이다. 어차피 탄로 날 것을 정직하게 말해 주면 좋을 텐데, 정부는 왜 그간 국민연금이 돌려 받지 못하는 세금이라고 하지 않고 원금보다 더 돌려 주는 것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돌이켜보면 주가가 떨어지면 정부는 국민연금을 끌어다가 주가를 떠받치고, 또 다른 곳에서 필요하면 갖다 쓰고 하는 식으로 국민 연금을 '애용'해 왔다. 또 연금제도를 시작할 때부터 순전히 국민들에게 '돈맛'을 보여주기 위해 연금 받을 자격이 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연금을 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국민연금이 계획대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해왔다. 만약 정부 주장이 맞다면 국민연금이 왜 이 모양이 된 것일까? 매달 꼬박꼬박 강제로 월급에서 깎여온 국민들은 누구에게 속은 것일까? 솔직히 말해 나는 애초부터 국민연금이 정부의 장담처럼 될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도 없다. 나는 앞으로 돌려 받지 못할 돈에 대해 미련을 버리고 있다. 다만 나는 우리가 낸 돈조차 돌려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국민연금제도를 운용하는데 정말 돈이 더 필요하다면 국민들에게 거둘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국민연금을 마음대로 운용하도록 묵인한 정치인, 증권시장에 거금을 쏟아 부으라고 지시한 정책 당국자에게서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TV 광고를 통해 정부가 국민들을 마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음 세대를 희생시키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이기적인 국민들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점잖게 타이르고 있다. 꼬박꼬박 돈을 낸 우리가 왜 하루 아침에 후손을 등쳐먹는 집단이 된 것일까?
마지막으로 정책 당국자에게 당부 드리고 싶다. 이 추운 겨울에 구세군 냄비 앞을 지날 때마다 선뜻 손을 지갑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국민들을 위해 차라리 연말 선물로 연금 기금 100조원을 국민 1인당 200만원씩 공평하게 나누어주면 어떤지? 그러면 내년 선거 때 정부에도 좋지 않겠는가.
김 형 진 국제법률경영대학원대학교 교수·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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