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은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른 것은 칠면조만이 아니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바그다드 깜짝 방문 소식은 여느 때라면 미식축구나 쇼핑 얘기로 채워졌을 만찬을 기습했다."멋진 방문이었어. 우리 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를 전달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거야." "또 하나의 TV용 스턴트야. 우리의 숨진 영웅들의 묘지를 찾았더라면 순수성을 믿을 텐데."
평가는 갈렸지만 바그다드 공항 식당에서 칠면조를 나르는 부시의 모습은 전장의 병사들과 함께 하는 지도자 상을 부각하기에 충분했다. 미 언론이 대중을 향한 백악관의 쿠데타라 부르는 것을 보면 이번 깜짝 방문의 극적 효과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대중 홍보 쿠데타의 성공을 점치기는 이르다. 부시의 무용담은 역설적으로 이라크의 암담한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반짝 인기가 시들해지면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수렁에 자신의 발을 더욱 깊숙이 담그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가 이라크에서 돌아온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전해진 스페인 정보장교 7명과 일본 외교관 2명의 피살 소식은 추수감사절 날의 '감동'을 빠르게 지우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깜짝 행동에 우리의 정치 현실이 겹쳐진다. 재신임을 묻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깜짝 발표는 지도력 부재를 인정하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와중에 시작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단식도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정치 지도자의 언행이 충격으로 국면전환을 노린 것이라면 국민의 진정한 박수를 받을 수 없다. 한 교민의 넋두리가 귓가를 맴돈다. "부시의 깜짝쇼는 순간적인 감동이라도 주는데…."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