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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미스터 쓴 소리"의 정치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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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미스터 쓴 소리"의 정치실험

입력
2003.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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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쓴 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조순형 의원이 지난 달 28일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지금까지의 정치 지도자 타입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고, 그런 점에서 새로운 기대를 갖게 된다.한국정치는 리더십 진공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대통령은 재신임을 자청했고, 과반수 의석을 가진 제1당 대표는 단식 투쟁 중이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난국을 돌파하는 대신 무리한 승부수를 던지고 있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사공은 많은데 배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부패, 무능, 이기심, 몰염치, 천박함 등으로 뒤얽힌 정치를 풀 수 있는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개혁을 외치지만 시끄럽기만 할 뿐 진전이 없다. 한국정치는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민주당이 조순형 대표를 내세운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당원들은 카리스마니 개혁성이니 정치10단이니 하는 지도자의 덕목대신 원칙과 신념이라는 덕목을 택했다.

그러나 그것은 적극적인 선택이라기 보다 민주당의 어려운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측면도 있다. 민주당의 비상사태가 뜻밖의 대표를 탄생시킨 셈이다. 조 대표는 비정치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사람이고, 그의 리더십은 전혀 검증된 바 없다는 점에서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고 있다.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거나 사귀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결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회식이나 술자리를 즐기지 않고 가능하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국회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의 아내는 유명한 연극배우 김금지씨인데, 애처가일 뿐 아니라 공처가라는 소문도 있다.

대통령이나 다른 누구에게나 고언을 서슴지 않는 것이 그의 강점이지만 그것은 그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 대표도 그런 지적에 동의하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동안 책임 있는 지도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을 많이 할 수 있었고, 또 그런 점 때문에 책임 있는 당직에 오르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원칙을 고수하고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치권에서 나 같은 사람 하나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제 정치권에 그런 사람 하나쯤 있어도 좋은 그런 인물이 아니라 당대표가 됐다. 대선에서 승리했으면서도 분당으로 야당이 된 기구한 운명이긴 하지만 민주당은 60석의 의석을 가진 제2당이다. 갈갈이 찢긴 깃발을 꿰매어 다시 흔들며 그는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의석을 늘려야 한다.

지금까지 정계의 날카로운 논객이던 그는 리더십을 테스트 받아야 하는 위치에 섰다. 그는 자유롭게 쓴소리하던 입장에서 쓴소리를 감내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는 자신을 보는 불안한 시선에 대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소박하게 응답했다. '자리'에 걸맞게 변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를 당대표로 밀어올린 힘은 상식과 원칙이었다. 국민은 상식이 통하는 정치인을 고대하고 있다. 자신의 쓴 소리대로 한다면 조 대표는 그런 정치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하고 매섭게, 눈앞의 이익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자고 설득하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는 당대표로 선출됐지만 여전히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는 사정도 엿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을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비주류의 리더십은 원칙과 정도에서 나온다. 그가 바른 길을 걷는다고 국민이 먼저 인정해야만 민주당 내에서도 그를 따를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중요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미스터 쓴소리'의 논평을 기다리곤 했다. 조 대표의 등장은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지만, 그가 어떤 정치를 펴나갈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조순형의 정치실험이 성공하여 이 나라 정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기를 빈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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