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국(32)은 '장군의 증손자'이다. 탤런트 김을동의 아들이고, '야인' 김두한의 외손자이며 독립투사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 올해로 데뷔 7년째, 훤칠한 외모에 가능성이 엿보이는 연기력까지 갖췄지만 여전히 그는 그런 '배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17∼19일 밤 9시55분 방송되는 MBC 창사특집극 '사막의 샘'(극본 선경희, 연출 이은규)의 주인공으로 발탁된 송일국의 어깨는 그래서 더 무거워 보인다. 그 동안 맡은 배역 중 가장 비중있는 역이기도 하거니와, '배경'을 넘어 '연기자 송일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열심히 해야지요"라며 말을 아꼈지만, 인터뷰 내내 긴장을 풀지 못하는 표정과 말투에서 '시험'을 앞둔 큰 부담감과 그에 못지 않은 욕심이 묻어났다.
'사막의 샘'은 광복 전후, 암울한 시대에 타협하거나 혹은 희생된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린다. 일제 하 방송국을 배경으로 색소폰 연주자 기현(송일국)과 아나운서 인희(장신영), 총독부 관리 승모(이형철)의 삼각사랑을 엮어넣었지만, 큰 줄기는 기현과 그의 부친을 죽인 친일파 영진(이정길)의 맞대결. 기현은 부친의 원수를 갚는데 실패하지만, 영진 역시 제 손으로 아들 승모를 죽이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송일국은 "어려운 역인 만큼 매력을 느낀다"며 의욕을 보였다. 한 달간 색소폰 교습도 받았다. 이 PD는 "비록 소리는 베테랑 연주자의 것으로 입혔지만, 드라마 주제곡만큼은 그저 시늉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연주하는 모습을 찍었다"고 귀뜸한다.
"너무 바쁜 어머니를 보며 배우란 직업을 혐오했다"는 그가 연기자가 된 걸 보면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미대에 응시했다가 3년 내리 낙방하고 무대미술을 해볼 작정으로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죠. 어머니를 따라 '용의 눈물' 촬영장에 갔는데 유동근 아저씨가 대뜸 '내가 너 같은 조건이면 연기하겠다'고 하시대요. 어머니 몰래 MBC 탤런트 시험을 봤는데 단 번에 붙었죠. 얼떨결에 들어선 길이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줄곧 단역만 맡다 한동안 활동을 쉬었던 그는 지난해 초 KBS 아침드라마 '골목안 사람들'로 복귀, '거침없는 사랑'을 거쳐 'TV소설 인생화보'에서 주연을 따냈다. '장희빈'에서는 희빈을 몰아내려는 김춘택 역을 맡아 희빈의 보좌상궁으로 나온 어머니와 연기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짧은 기간에 현대극 시대극 사극을 넘나들며 연기의 폭을 넓혀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 작품은 그 멀고 험한 길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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