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입니다. 동백꽃이 피겠군요. 아무리 마음이 간절해도 계절흐름을 막거나 더디게 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지난 계절에 대한 미련이 아직 많이 남아 있건만 이제 달력의 마지막 장을 남기게 되었습니다.이 즈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물이 동백입니다. 지난 겨울에도 동박새와 돕고 사는 동백나무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동백꽃처럼 그 계절을 상징하는 확실한 식물이 워낙 부족해서인지, 동백나무의 개별적인 특별함이 많은 얘깃거리를 남겨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해도 동백의 그 붉은 꽃잎이 선연히 살아나 마음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동백나무는 동양 나무입니다. 고향이 우리나라 해안가와 남쪽 섬, 그리고 중국, 특히 우리나라와 아주 가까운 산둥반도가 대표적인 산지라고 합니다. 일본도 동백을 아주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진한 붉은 빛 꽃잎을 가진 홑겹의 자생하는 동백의 아름다움을 따라올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전 세계에는 수백 종의 품종이 개량돼 퍼져나갔으며 그 역사도 아주 오래됩니다.
유럽에 처음 동백꽃이 소개됐을 때 그 인기는 참으로 대단하였답니다. 선배에게서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그 반영이 바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로 만들어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입니다. 우리는 이 오페라를 흔히 '춘희(椿姬)'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 그렇게 부른 것을 우리가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주인공인 비올레타가 사교계에 나올 때 동백꽃을 달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동백나무라는 뜻을 가진 '춘(椿)'를 써서 '동백나무 아가씨'라는 뜻으로 지어졌다는 거죠.
정말 재미있는(슬프고 씁쓸한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이 한자를 두고 동백나무가 아니라 참죽나무 혹은 가죽나무 '춘'으로 부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춘희라고 하면 참죽나무 아가씨가 되는 것이지요. 혹시 이 참죽나무를 접해본 분이라면 이 나무가 잎을 나물로 먹는 유용한 식물이기는 해도 아름답고 화려한 꽃과는 연관을 지을 수 없는, 본데없이 큰 나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오페라 이름 하나에도 식물과 관련돼 이렇게 제대로 알고 바로잡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동백나무는 새가 꽃가루받이를 도와 준다고 해서 '조매화'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도 새와 꽃과의 긴밀한 협조와 계산이 깔려있습니다. 동백꽃이 붉은 것은 곤충과 달리 새가 붉은 색을 잘 인식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구요(열대지방의 다른 조매화들도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붉은 색이 많습니다). 동백꽃의 아름다움은 그 진붉은 꽃잎 안쪽에 샛노란 수술이 마치 작은 성벽의 모양을 이루고, 역시 광택이 나는 진한 녹색의 잎새와 잘 어울린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수술의 모습은 실제 성벽처럼 다른 자잔한 곤충들의 침입은 막고 자신이 생산한 꿀들을 온전하게 새에게 내주기 위한 장치랍니다. "왜, 많이 만들어서 곤충도 주고 새도 주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동백나무 입장에서는 꿀을 만드는 일에 에너지 소모가 많으므로 정확한 타깃을 만들어 그들만을 위한 전략상품을 내놓은 것이죠.
새의 입장에서 보면 추위 때문에 열량이 더욱 많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에너지를 써가면 이 꽃 저 꽃 날아다녀야 하는데 그 수고의 대가로 얻는 꿀이 너무 적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정 양의 꿀을 제공해야 새를 유인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다른 충매화들은 꿀과 함께 향기를 갖는 일이 많은데 동백꽃은 그렇지 않은 것도 것도 새들은 냄새에 둔하다는 사실이 반영된 것이랍니다.
꽃 한송이가 피어 살아가는데도 이렇게 많은 고려가 필요하니 사람살이가 복잡한 것은 당연한 듯도 합니다. 남쪽섬으로 동백꽃 구경이 가고 싶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 @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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