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두주 글·이자벨 시몽 그림·박희원 옮김 낮은산 발행·8,500원
성냥팔이 소녀는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집안을 창문으로 들여다본다. 틀림없이 부러움에 가득 찬 눈길이었으리라. 크리스마스의 행복은 끝내 그의 것이 되지 못하고, 소녀는 꽁꽁 얼어 죽는다. 이 동화를 읽으면서 참 이상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소녀가 얼어 죽게 내버려뒀을까. 안데르센은 이웃의 고통이나 눈물을 돌아볼 줄 모르는 동정 없는 세상을 고발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 집안에 있던 한 아이가 성냥팔이 소녀를 봤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그림책 '창 밖의 사람들'은 창 너머로 무심히 던진 아이의 눈길로 안팎의 상반된 두 세계를 나란히 보여준다. 주인공은 입김이 서린 뿌연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그린 얼굴이다. 유리창 위 이 착한 사람은 창문 너머 거리의 노숙자들을 본다.
웅크린 채 추위에 떨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손가락 그림은 눈물 짓는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안타까워 할 뿐이다. 커튼을 내리는 순간 자신도 바깥 추운 세상에 속하게 된다는 운명을 모르는 채.
이 그림책은 표현 방식이 독특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유리창 위 착한 사람과 창문 너머 겨울 거리의 스산한 풍경이 번갈아 나온다. 유리창의 얼굴 그림은 사진을 찍고, 노숙자들은 점토로 인형을 빚고 사진을 찍어 처리했다. 여느 그림책에서 보기 힘든 표현 방식이다. 머리를 감싸 쥐거나 녹슨 철문에 기댄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그들의 표정은 점토의 축축한 질감 덕분에 더욱 쓸쓸하고 힘겨워 보인다. 충격적일 만큼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이다.
귀 없는 담벼락과 벙어리 하수구는 그들이 건네는 말을 듣지 못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돌로 된 담벼락의 거친 표면과 쇠로 된 하수구 뚜껑의 차디찬 단단함을 확대한 사진은 점토 인형들이 호소하는 외로움과 절망을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반면 손가락으로 그린 얼굴에 나타난 소박한 정감과 집안의 포근한 느낌은 거리 풍경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창 밖의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자극한다.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만을 보여주고 싶은 어른들에게 이 책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아이가 내다 본 창 밖의 차가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빈곤의 문제를 곧장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직한 눈으로 바라보고 열린 마음으로 아파할 수 있는 아이들의 능력을 믿는다면, 나란히 앉아 함께 읽어도 좋을 책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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