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지음 청어람미디어 발행·각권 2만3,000원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내내 외우고 기억하려고 했던 사람은 모두 외국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00년 전에 우리 선조 중에서도 해양생물에 관심을 갖고 수백 종의 특징·분포·쓰임새에 대해 치밀하게 연구하고 기록해 놓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현직 고교 생물교사인 이태원(31)씨가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서적인 정약전(1758∼1816)의 '현산어보(玆山魚譜)'를 오늘의 시각에서 새롭게 고증한 '현산어보를 찾아서'(전 5권)를 완간했다. 지난해 12월에 낸 1∼3권에 이어 최근 4, 5권을 펴낸 그는 "7년간 도감을 펴 들고 정약전의 발자취를 찾아 다니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산어보는 정약전이 천주교도로 몰려 흑산도에서 16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주변의 수산 동식물을 조사하고 채집해 쓴 기록. 당초 자산어보로 알려졌으나 검을 '자'(玆)는 현으로 더 많이 읽어왔기 때문에 '현산'으로 읽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서울대 생물교육과) 대학원 재학시절 '육수생물학' 강의를 듣고 민물고기 공부를 시작한 후 우연히 마산의 한 서점에서 정문기씨가 국역한 '현산어보'를 만나 고전 생물학에 빠져들었다"며 "그때부터 정약전과 관련된 기록과 문헌을 수집하고 현지답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흑산도와 주변 섬을 일곱 번이나 찾았고, 갈 때마다 일주일 이상 머물며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검증했다. 정약전이 책을 쓰면서 현지인 장창대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듯 이씨도 주민들의 증언과 경험담을 들어 참고했다. "원본에 한자어로 나와있는 물고기 명칭과 현지 사투리, 도감에 표시된 용어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부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습니다."
흑산도 지역을 둘러보고 탐사하는 기행문으로 구성된 그의 책은 현산어보를 텍스트로 삼아 해양생물에 대한 정보를 400여장의 세밀화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했다. 글 중간중간에 현산어보 번역문을 싣고 현대적 해석과 비평, 역사적 배경 등을 상세히 덧붙였다. 예컨대 원문에는 '사어( ·상어)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태생이며, 특별히 새끼를 배는 시기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수놈은 두개의 생식기가 있고, 암놈의 뱃속에는 두개의 태보가 있다. 각각의 태보에는 4,5개의 태가 들어있고, 이 태가 성숙하면 새끼가 태어난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알이 없어지면서 새끼가 태어난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돔발상어, 까치상어, 별상어 등의 난태생 상어인 것 같다"며 "정약전이 묘사한 상어의 내부구조와 새끼발생과정 설명이 매우 정확하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상어라는 이름도 까끌까끌한 피부에서 유래했으며 선조들이 상어의 껍질을 사포로 사용했다는 기록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흑산도 홍어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현산어보에는 수놈이 교미를 하다가 함께 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색을 밝히는 자에게 교훈이 될 만하다고 지적한 내용이 있다. 이씨는 실제로 수놈의 생식기가 두 개이고, 교미할 때 그 중 하나가 암놈을 붙잡고 늘어져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만만한 게 홍어X'이라는 말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크기도 작고 맛도 덜한 수컷을 암컷으로 속이기 위해 생식기를 잘라버린 데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는 단순히 해양생물에 대한 현대적 해석 외에도 이와 관련된 속담부터 정약전의 행적, 친동생인 정약용과의 교류내용, 당시 실학자들의 세계관과 자연과학 등에 대한 지식들이 녹아 있다. 특히 4권에서는 그 동안 이름만으로 알려졌던 정약전의 저서 '송정사의(松政私議)'를 문채옥씨의 집에서 발굴할 때의 사연과 원문·번역문도 들어있다. 국가의 잘못된 소나무 정책으로 송림이 파괴됐다고 비판한 내용은 송림 파괴의 주범이 일제라는 기존 주장을 뒤집었고, 당연히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는 "당시의 기록이 현대 생물학에서 볼 때 군데군데 착오도 있지만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위한 과학적 탐구자세와 그 결과는 대단한 것"이라며 "선조들의 자연과학적 업적을 쉽게 풀어 쓰는 작업을 계속해보겠다"고 말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 새롭게 풀어쓴 古典 어떤게 있나
고전을 읽는 것은 고역이다. 일단 용어가 난해하고 시대적 상황도 달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와 통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고전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근 출간된 책으로는 지난 해 말 '현산어보를 찾아서'(3권)에 이어 그린비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시리즈가 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고미숙 지음), '니체의 위험한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병권 지음),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권용선 지음) 등이다. 또 내년 초에는 이 출판사에서 마르크스의 '자본', 스피노자의 '에티카',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논어' 등이 나온다. 청어람미디어는 '현산어보'를 아동물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책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노력과 비용에 비하면 독자들의 호응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현산어보'가 모두 2만5,000부 정도 팔렸고, '열하일기'는 1만8,000부를 넘었다고 한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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