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부터 일본 소설 읽기에 쭉 빠져 있다. 주5일제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 하다가 몇 년 동안 틈나는 대로 사 모았던 것들을 주말마다 하나씩 꺼내 읽었다. 마음 가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느낌이 닿는 대로 이렇게 마음을 놓아 버리고 책을 읽을 때에는 마음의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주인공들의 생각이나 행동보다는 그 이전에 놓인 감각이나 감정 등이 생생하게 살아서 가슴 속을 파고 든다.이러한 방심(放心)의 독서를 할 때, 내 버릇은 동시에 몇 종의 소설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섞어가면서 읽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후의 마지막 일요일', 요시모토 바나나의 'N·P'를 동시에 읽었다. 눈 덮인 온천장을 배경으로 게이샤 코마코의 아슬아슬한 사랑이 스며들어 간 섬세하고 관능적인 문장, 감정이 드러날 듯 말 듯 희미하게 걸쳐진 함축적인 문장이 주변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는 환각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연필로 꾹꾹 누르면서 쓴 듯한, 그러면서도 드문드문 마음의 거문고 줄을 잊지 않고 단조로 밟아 내려가는 하루키의 정교하면서도 우수 어린 문장에 빠져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마지막에 내 마음에 온통 피어난 것은 붉은 바나나 꽃들이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도 어느 사이에 조용히 마음에 피어나서 오랫동안 지지 않는다. 이 꽃은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오랜 시간 강바닥을 헤매는 고통보다는 손에 쥔 한 줌 사금에 마음을 빼앗긴다"라고 작가의 입을 빌려 고백한 적이 있다. '고통의 문학'에서 '쾌락의 문학'으로, '불행의 문학'에서 '행복의 문학'으로 옮겨가려는 이 꽃의 분투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 작품이 'N·P'이다.
실어증, 자살, 근친상간, 레즈비언 등 인생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이 소설 전체를 진득하게 물들이고 있지만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고 속도감 넘친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도 하고, 어찌 보면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듯도 하다. "스이를 얼마나 좋아해?"라는 물음에 "이렇게 거리에 있으면, 길 가는 여자들의 얼굴이 전부 스이로 보여"라고 답하고 또 금세 얼버무리는 10대 후반 수준의 낭만적 통찰이 가득하지만 결코 유치하거나 거북하지만은 않다. 그러한 통찰이 점점이 이어지면서 세계가 자아에 가하는 온갖 고통을 받아들이고 승화하면서 인생을 긍정하게 만드는 힘이 뿌리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꽃은 겨울에도 마음속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붉디붉은 빛깔로 나를 끝없이 이야기 속으로 유혹할 것이다.
/장은수·민음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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