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공중 폭파됐다. 보잉기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기착했다가 다음 기착지인 태국의 방콕을 향해 비행 중이었고, 기내에는 대부분이 중동 근로자였던 한국인 승객 93명과 외국인 승객 2명, 승무원 20명 해서 모두 115명이 타고 있었다.국내외 수사 기관의 눈길은 바그다드에서 탑승해 1차 기착지인 아부다비에서 내린 두 일본인에게 이내 집중되었다. 여권에 기재된 이름이 하치야 신이치(蜂谷眞一), 하치야 마유미(蜂谷眞由美)였던 이 남녀는 바레인을 거쳐 요르단으로 가다가 검거되자 독극물을 삼켰지만, 여자는 살아 남았다. 12월15일 한국으로 인도된 하치야 마유미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본명이 김현희(金賢姬)이고, 음독 자살한 남자(본명 김승일)와 함께 김정일의 지시로 보잉기에 폭발물을 놓고 내렸다고 진술했다. 김현희는 1990년 3월2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지만, 당시 대통령 노태우는 보름 뒤인 4월12일 유족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를 특사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하루 앞두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현희가 유권자들의 대북 불안 심리를 크게 부추겨 결과적으로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던 터라, 일찍부터 국내외에서 이 사건의 조작설이 나돌기도 했다. 실종자들 대부분이 노동자여서 북한 정권이 테러의 표적으로 삼았을 성싶지 않다는 점도 이런 조작설을 부풀리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조작설을 뒷받침할 실속 있는 증거가 제출된 바 없다. 그리고 만일 사건의 진상이 당시 안기부의 발표대로라면, 어느 때가 되든 김정일이 대한민국 법정이나 국제 법정에 서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김현희는 1997년 12월 전직 안기부 요원과 결혼한 뒤 조용히 살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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