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자와 신이치 지음·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발행·1만원
20여 년 전인 30대 초반에 일본 인문학계의 차세대 사상가라는 찬사를 받은 종교학자 나카자와는 이 책을 통해 특유의 신화 해석 감각과 그것을 풀어내는 테크닉을 보여준다. 신화 비교는 매력적이기 이를 데 없는 작업이지만 조지프 캠벨 같은 탁월한 학자에게, 또 신화 원전의 발굴과 소개는 또 다른 학자들의 몫으로 넘긴다. 대신 니카자와는 신화에 살아 숨쉬지만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거기서 현대 문명의 오류와 한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에서 검토 대상으로 삼은 일본 홋카이도(北海島)와 사할린 등 동북 아시아 지역 원주민과 북미 북서 지역 인디언의 신화(저자는 이를 뭉뚱그려 '동북 신화'라고 부른다)에서 저자가 찾아낸 것은 야성(野性)이다. 동물을 인간과 전혀 별개의 것으로, 더 나아가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던 시절, 그러니까 인간이 자연스럽게 동물과 공존하던 시대의 모습을 그는 동경하고 있다. 단지 그리워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9·11 사건 같은 문명의 비극, 광우병이나 구제역 같은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야성을 회복하자는 얘기가 좀 황당하다면 나카자와가 말하는 '대칭성의 사회'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대칭 관계란 인간이 '조금도 특별한 존재가 아닌 생명의 일원'이면서 동물과 대등한 자격으로 공존하는 관계를 말한다. 동북 아시아의 푸크치족, 코랴크족, 그리고 알래스카의 여러 부족과 북미 북서 해안과 삼림 지역 인디언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곰·염소는 거의 이런 관계이다. 북반구 최강의 동물인 큰곰은 인간 사회의 샤먼과 동일하며, 염소는 사냥꾼의 아내가 되는 식이다.
북미의 톰슨 인디언은 '자기 자신도 동물이 되어 동물사회의 풍습이나 생활을 체험하고 나아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동물도 자연과 똑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는' 시절의 신화를 간직하고 있다. 인디언들은 또 연어를 잡아 살과 내장을 깨끗이 먹은 후에 남은 뼈나 껍질도 정성스럽게 다루었다. 쓰레기장 같은 곳에 함부로 버리는 일은 단연코 없었다. 그들은 예를 갖추고 가능하면 뼈를 부러뜨리지 않도록 해서 조심스럽게 강에 흘려보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대칭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신화적 사고로 보자면 '근대의 기술은 자연과 우애로 가득 찬 커뮤니케이션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도발에 의해 자연이 내장하고 있는 부를 손에 넣으려는' 일방 통행이며 차별과 지배로 가득 찬 문화이다. 저자는 문명이 득세하고 신화적 사고가 폐기된 것은 수장이나 샤먼 등으로 정치와 제사의 역할이 분담돼 있던 부족사회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왕권 사회, 즉 국가가 탄생한 뒤부터라고 풀이했다.
'인간과 동물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사고방식과 인간사회 안에 불평등이나 불의가 행해지고 있는 현실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 는 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말을 인용한 지적에 저자가 책을 쓴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9·11 직후부터 몇 차례 저자가 교수로 있는 일본 주오(中央)대 등에서 진행한 강의 내용을 묶었다. 그래서 내용이 치밀하지 않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저자는 학문적 정교함을 양보하는 대신 활력 있는 글쓰기를 얻었다. 올해 초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첫 권이 나오고 모두 5권으로 나올 나카자와의 '카이에 소바주'(야생적 사고의 산책·고단샤 발행) 시리즈의 제2권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