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김동원'은 동의어나 다름없다. 김동원은 배우 외에 아무것도 아니요, 배우가 모두인 사람이다. 그는 명배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존자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배우가 된 사람이고 지금도 현역이고 그래서 가장 오래 배우인 사람이다."1992년 11월16일자 한국일보에는 김성우 당시 논설위원이 쓴 '축희수 김동원'(祝喜壽 金東園)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어느 한 사람의 77세 생일에 바치는 헌사가 신문 앞면에 등장한 일은 전무후무했다.
그러나 1933년 배재고보 시절 '성자의 샘'이란 작품으로 무대에 선 이래 60년간 '햄릿' '파우스트' '세일즈맨의 죽음' 등 170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무대를 지킨, '영원한 햄릿'인 그를 기리는 글 치고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그만큼의 글이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이 달 그는 88세 생일을 맞았다. "아무 욕심이 없어요.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니까요. 좋은 역할 참 많이 맡아 했지요."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從心)의 나이인 칠십을 넘기고도 무려 열 여덟해를 더 산 사람 치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건강해 보였다. "별다른 건강 비결은 없고 하루에 한 시간씩은 꼬박꼬박 걷습니다." 지금도 맘에 드는 연극 공연은 빼놓지 않고 본다는 그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후학과 자녀들은 그의 88번째 생일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25일부터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차범석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연극평론가 유민영씨, 연극연출가 임영웅씨 등이 중심이 된 '김동원 선생 미수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영원한 햄릿, 김동원의 예술과 삶'이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60년간 그가 공연했던 작품의 무대 사진과 프로그램, 신문 기사, 영화와 TV 드라마 출연 사진, 무대 의상 등을 선보인 전시회에 때맞춰 자서전 '예(藝)에 살다'에 연극사 자료를 보탠 '米壽(미수)의 커튼콜'도 출간돼 그 의미를 더했다.
"작가는 글로써 화가는 그림으로써 사람들에게 남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무대를 떠나면 남길 수 있는 게 없죠. 그래서 무대 사진을 찍어서 기록으로 남기기로 마음먹었지요." 1934년 열 여덟 나이에 배우의 꿈을 품고 일본 니혼(日本)대 예술과에 입학한 연극학도의 꿈은 이미 현실이 됐다. "연극을 시작할 때 배우로서 외길을 걷겠다고 아버님과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지켜서 기쁩니다."
배우로서 그가 남기고 싶은 것은 사진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배우를 천시하는 걸 보고 속이 상했죠. 그래서 처음부터 '존경 받는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연기 인생에서 한 차례의 스캔들도 없이 가정에 충실했습니다. " '배우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평생의 화두를 간직하고 살아온 그는 행복한 연극인으로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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