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를 가는 남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미 매사추세츠주 노스 앤도버에서 계간지'앳-홈 대드(At-Home Dad)'를 발행하는 피터 베일리가 자신의 홈 페이지에 올린 표어다. 2001년 4월 만들어진 이 인터넷 홈페이지의 회원은 현재 456명. 모두 가정에서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풀 타임 파더(Full time Father)'들이다.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금속 공예가 브래드 맥두걸(31)은 2살 난 딸과 8개월 난 아들을 누가 키울지를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부인 멀비는 회사의 마켓팅 담당 부사장이다. 자녀를 육아원에 맡기지 않으려는 그들 부부가 택할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였다. 맥두걸은 "내가 공예품을 팔아 1년에 버는 돈은 1만 2,000 달러지만 멀비의 연봉은 그보다 적어도 10배 이상이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이처럼 기저귀를 갈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미스터 맘(Mr. Mom)'족(族)들이 늘고 있다. 10년 전 미국의 아버지들은 일자리를 잃고 나서야 집에 머물렀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컴퓨터 엔지니어, 투자 브로커, 유명호텔 요리사, 대학 교수 등 전문 직장인들이 바깥 일을 버리고 '재택(在宅) 아빠'의 길을 택하고 있다.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재택 아빠와 사는 자녀들의 수는 1990년 이래 70%가 증가, 지난 해 25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날수록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택 아빠들의 증가는 곧 가족 구성원의 전통적 역할이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직장에서의 아내의 역할을 인정하며 그런 아내 때문에 자신이 희생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개인 사업을 접고 언어 병리학자인 부인 티나를 대신해 10년 전부터 세 아들을 길러온 캘리포니아의 호간 힐링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았다. 선택을 했을 뿐이다. 집에 남는 것은 진정한 특권"이라고 말했다.
일리노이 파크 리지에 사는 론 피라로브스키는 3살 짜리 딸과 4개월 된 아들을 돌보는 자신의 역할은 아내가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집안 일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홈 대디'들은 엄마가 집에 있어야 자녀에게 더 좋을 것이라는 통설에 단호히 "노"라고 외친다. 홈 대디 가정을 연구해온 예일대 아동연구센터의 카일 프루엣 박사는 아버지가 기른 아이들이 사회적 문제에 훨씬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또 아이들을 전문 육아기관에 맡길 때보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 일하는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쓴다는 조사도 있다.
재택 아빠들은 단순히 엄마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이미 있다. 버즈 매클레인은 "우리를 미스터 맘이라고 부르지 마라. 우리를 부르고 싶다면 미스터 대드(Mr. Dad)라고 해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들에게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설거지, 빨래, 집안 청소, 밥짓기, 잔디깎기 등 집안 허드렛일은 재택 아빠들에게도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종종 "설거지를 하는 좋은 방법이 있지. 아내에게 하도록 남겨두는 거야"라고 불평하지만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로부터 "왜 이렇게 지저분한 거죠"라고 꾸중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재택 아빠들이 아내가 귀가한 뒤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보다도 더 당당하게 휴식을 취하고, 운동을 즐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인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빈번하게 출장을 가게 되는 경우도 부부 관계의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미네소타 애플 밸리에서 '대드 투 대드(DAD-to-DAD)'네트워크를 설립한 커티스 쿠퍼는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오히려 부부 사이를 더욱 튼튼하게 한다"고 말한다. 마켓팅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인을 둔 쿠퍼는 "우리가 아이들을 육아원에 맡겼다면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택 아빠들에게 위기의 순간은 정작 자녀가 기저귀를 떼고, 초등학교에 갈 무렵에 찾아온다. 한 조사결과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미스터 맘들의 75%가 직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상당수는 직장에 복귀할 수 있는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고민을 털어 놓는다. 그래서 직장으로 돌아갈 때를 대비, 경영학 석사학위(MBA)과정을 밟는 등 자기 계발에 힘쓰는 재택 아빠들도 많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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