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라, 한나라당. 웬 뜬금없는 단식 투쟁인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단식투쟁에 들어갔단다. 국회 과반수의 제1당 책임자가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여 단식투쟁까지 할까.단식투쟁은 원래 힘없고 악에 받친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한나라당이 악에 받쳤는지는 모르나, 과연 힘없는 당일까. 국회 의석 과반수를 가볍게 초과하여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국정 다 발목 잡을 수 있다. 게다가 힘과 돈을 가진 기득권층과 보수 언론의 전폭적 지지 아래 대한민국의 주류를 대변하고 있다. 다 잡은 정치 권력을 두 번씩이나 놓쳐서 그 원통함이 깊고 깊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소속 당도 없이 꼬마 당의 비공식 지원만 받는 대통령보다는 부자임에 틀림없다.
대통령의 특검 거부에 대해 말해 보자. 한나라당이 애당초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특검을 들고 나온 것부터가 수상했지만, 일단 법이 정한 권한이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협조하여 의석 3분의2가 넘는 찬성으로 특검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3분의2가 아니라 4분의3이 찬성했다고 해도 거부권을 가진 대통령은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국회에서 재의하여 또 통과시키면 된다.
헌법이 정한 절차대로 하면 되는데,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논란거리란 말인가. 한나라당뿐 아니라 국민이나 언론이 거부권 행사를 두고 말이 많은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 헌정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람들이 법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한나라당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몇 가지 까닭 때문이다. 첫째, 불법 정치(선거)자금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쟁점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 측근 비리와 각 당의 부정 모금은 철저히 파헤쳐 관련자들을 다 감옥에 보내고 정치 생명을 끝내야 한다. 검찰 수사가 미진하여 믿을 수 없으면 그때 특검에게 맡기면 된다. 그것도 시원찮으면 국민 저항 운동을 전개해서라도 차제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 쟁점을 희석해서는 안된다.
둘째, 헌법 절차를 무시하면서 민생 법안도 팽개치고 극한 투쟁으로 가는 것은 한 마디로 재의에서 통과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첫 표결에서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협조를 얻었지만 재표결에서는 그것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치력을 발휘하여 다시 협조를 얻도록 노력하고, 그것이 안되면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민주적인 정치 게임이다. 질 것 같으니까 판을 엎고, 그것도 단식 투쟁이라니? 어이없는 일이다.
셋째, 한나라당은 이 참에 대통령의 기를 꺾고 정국을 완전히 장악하고 싶어한다.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내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여 실질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여, 꿈에서 깨기 바란다. 노 대통령이 아무리 미워도 국민들이 그런 상황을 원하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특검 정국을 주도하고 나아가 정치적 대안 세력이 되려면 먼저 깊은 자기 반성부터 해야 한다. 지금껏 한나라당이 국민을 위해, 그리고 정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나. 한 일이 있으면 말해 보기 바란다.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하여 특검안을 받아들이는 게 나았으리라는 사람들의 견해에도 일리가 있다. 필자는 꼭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인 아쉬움의 차원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아쉬움의 차원을 넘어 법질서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국면 전환과 주도권 장악만을 위해 국회와 국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
한나라당은 무책임한 떼쓰기를 중단하고 책임있는 제1당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국민들은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외면할 것이다. 부디 정신 차리기 바란다.
김 영 명 한림대 사회과학대 학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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