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의 철강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해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정한 이후 각국의 대응 수위가 높아지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일본을 축으로 하는 무역전쟁이 가시권에 들어섰다. WTO는 내달 1일 분쟁해결기구 정례 회의를 갖고 WTO 판정을 최종 선언할 예정. 각국은 5일 간의 조정기간을 거쳐 12월 6일부터 미국산 제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적법하게 부과할 수 있게 된다.유럽연합, "타협은 없다"
가장 위협적이고 강경한 대응책을 마련한 쪽은 EU다. EU는 제일 먼저 미국 상품에 대해 22억 달러 상당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WTO에 통보했다.
이 같은 관세가 현실화한다면 미국 내 수출업자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다. 뿐만 아니라 오렌지, 땅콩, 쌀 등 미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품목들로 선정된 탓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는 심각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2005년 3월에 끝나는 철강 세이프가드를 내년 가을 조기 종료하는 방안을 철강업계와 합의해 EU측에 제시했다. 그러나 EU는 "타협은 없으며 즉각적인 철강 세이프가드 철회만이 보복조치를 피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강경 입장을 고수,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채찍과 당근
중―미 간에는 이미 외곽에서 무역 분쟁이 불 붙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산 섬유제품에 대해 수입물량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중국산 텔레비전에도 고율의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철강 세이프가드와 관련, 대 중국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돌려치기'를 시도한 것이다. 중국도 이에 맞서 미국, 한국, 일본산 화학 제품에 대해 49%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고 미국의 섬유제품 수입제한에 대해서는 "WTO에 제소하겠다"며 발끈했다.
다만 중국은 성급하게 미국과의 정면대결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협과 동시에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적정 선으로 줄이는 '당근책'도 검토되고 있다. 내달 7일 원자바오 총리의 미국 방문이 분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일본, 준비는 마쳤지만…
고심을 거듭하던 일본은 26일 보복관세 부과 방침을 WTO에 통보, 대미 무역 보복조치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철강, 석탄, 휘발유, 의류, 침구 등에 5∼30%의 보복관세로 총액은 107억엔(약 9,800만달러)에 달한다. 일본은 이르면 내년 초 보복관세 부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일본은 막대한 대미 수출 문제가 걸려 있어 실제로 보복조치를 취하기는 힘들다. 미국과 과거 여러 차례 분쟁을 경험한 터라 철강 문제 하나로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적다. 보복 준비 절차 마련은 EU 등 각국과의 공동보조를 위해 구색 맞추기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대일 수출량이 크지 않고 일본 산업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비 핵심 품목들이 보복 대상으로 선정된 데서도 드러난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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