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양태는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집회와 시위의 원형(原型)이 되었다. 독재 타도, 민주 쟁취의 당시 투쟁방식은 그대로 전승되거나 더 개량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광복 이후 수많은 시위가 벌어졌지만, 한국의 시위는 1980년대를 고비로 질과 양에서 몇 단계 발전했다. 한국인들은 시위를 잘 하며 시위학습도 잘 돼 있다. 특히 1주년을 맞은 촛불시위는 독특한 사회문화현상으로 외국의 주목을 받을 만큼 유력한 시위방법으로 정착했다.민주화의 대의(大義)를 앞세운 1980년대의 투쟁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4·19에 이어 또다시 독재라는 거대한 국가폭력에 대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승리하기에 이르렀다. 6월항쟁의 승리는 우리나라 민주화에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폭력을 폭력으로 이긴 경험이 부(負)의 유산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강해졌다. 요구를 개진하는 방식의 민주성에 대한 고려가 소홀하고, 절차적 정당성이 경시되는 이유는 민주화라는 목표가 옳으면 다른 요소는 중시하지 않아도 됐던 유풍 때문이다. 시위의 폭력성과 불법성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으며 일반 국민의 피해와 영향에 대해서도 배려가 부족했다.
다시 화염병이 등장하고 각목과 쇠파이프에 볼트 너트를 이용한 새총이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 제발 전경들 얼굴 좀 그만 때리라는 의사의 호소까지 나왔다. 투쟁방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평화적 시위의 정착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11월 9일 민노총의 화염병시위 이후 한노총이 23일에 연 집회는 아무 탈없이 끝났다. 이어 26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노총 집회도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화적으로 진행됐으며 참가자들은 집회 후 행사장 주변을 청소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위주체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갈등의 관리주체인 정부의 잘못도 크다. 각종 사회세력의 충돌을 내버려 두는 듯한 자세는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조장하는 요인이 된다. 정부 스스로 갈등을 만들어내는 경우까지 있다.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대처방침에도 일관성이 없다. 정치상황과 시위주체에 따라 집시법 운용을 편파적으로 함으로써 법 집행의 공신력과 권위가 실추되고 있다.
집시법 자체도 문제다. 국회 마비로 입법과정이 정지상태가 됐지만, 행자위를 통과한 집시법 개정안이 사실상 집회금지법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독자적 개정시안을 낸 70여 시민·사회단체의 지적대로 주요 도로에 교통불편을 야기하거나 과도한 소음을 유발하는 집회를 금지·규제하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주요 도로란 사실상 행진이 가능한 대부분의 도로다. 집회와 시위는 알리기 위해 하는 것이며 도로는 유력한 시위장소다. 그런데 주요 도로라는 이유로 집회와 시위를 막고 확성기 없이 시위를 해야 하는 수준인 소음제한치 80데시벨을 지키라는 것은 무리다. 사복경관의 집회장소 출입 허용도 사실상 집회방해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집회에서 폭행 등이 발생한 경우 남은 신고기간에 같은 목적으로 열리는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폭력의 전력이 있으면 집회를 금지하고 목적이 같은 다른 단체의 집회를 막는 조치도 필요하다. 다만, 누적된 객관적 통계와 채증자료가 규제의 근거가 돼야 한다. 이 규정의 자의적 적용을 막는 장치가 갖춰져야 한다. 미국에서는 변호사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된 시민옵서버가 시위를 따라 다니며 불법 폭력성 여부를 감시하며 폭력시위자가 있을 경우 법정에서 증언도 한다는데, 우리도 그런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법을 정교하게 만들고 입법조치가 끝난 뒤에는 문자 그대로 엄정하게 적용하는 원칙을 지켜야 폭력시위가 해소될 수 있다.
임 철 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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