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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칼럼/비자금은 업무상 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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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칼럼/비자금은 업무상 횡령

입력
200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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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천문학적인 금액의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잊혀질만 하더니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북한 위정자에게 갖다 바친 현대 대북 송금사건이 터지고, 이 와중에 개인적으로 수백억 원을 챙긴 정치인들도 등장했다. 게다가 지하 주차장에서 재벌기업과 정치인 간에 조직 범죄를 연상시키는 100억원대 현금 거래가 비밀리에 이뤄지고, 대통령 당선자의 일개 집사에게 11억 원을 갖다 바친 SK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또한 대선자금 관련 비자금 조성을 밝히기 위해 재계 서열 1, 2위인 삼성과 LG, 그리고 현대자동차 그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실시되었다.한편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밝히기 위한 특별검사제 실시 여부로 제1당의 대표가 단식 농성에 들어가는 등 정치권과 재계는 개점휴업 정도가 아니라 풍비박산 상태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LG그룹 계열 신용카드 회사가 현금서비스를 일시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져 민초들의 생계는 이만저만 위태로워진 게 아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남편이 몰래 숨겨두는 비상금은 그래도 애교로 봐줄 수 있겠지만, 지금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비자금은 그 조성경위나 규모 그리고 용도를 서민들의 눈으로 볼 때 억장이 무너질 뿐 아니라 추악하기 그지없다.

비자금은 말 그대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밀리에 축적한 자금이다. 기업이 거래과정에서 발생하는 리베이트와 회계처리의 조작 등을 통해 조성한 부정한 자금이다. 예를 들어 어느 건설회사가 실제 100억원 규모의 토목공사를 하청업체에 하도급 주었음에도 장부상은 110억원을 하도급 대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허위 기재한 후 차액인 10억원을 하청업체로부터 비공식적으로 돌려 받아 비자금으로 축적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일반 회사에서도 무자료 영수증을 모아 접대비 등으로 비용 처리하기도 하고 심지어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직원에게 월급을 지급한 것으로 하거나, 근무하는 직원일지라도 실제 월급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한 후 그 차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하기도 한다.

기업들은 이러한 비자금을 왜 조성할까. 지금 언론에 오르내리는 정경유착의 부패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거액의 뇌물이나 부정한 정치자금을 건네기 위한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물론 기업 경영자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직원들의 영업 인센티브 등으로 지급하기 위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절세의 명분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비자금 조성 행위는 그 자체로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하는 명백한 불법이거니와 기업의 투명성 차원에서도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행위다. 자금흐름의 투명화를 위해 금융실명제까지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비자금 천국으로 낙인 찍혀 스위스 비밀계좌에 넣어 둔 검은 자금이 행여 몰려오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최 용 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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