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는 25일 발표한 기아와 에이즈, 여성폭력에 대한 보고서 및 성명서를 통해 충격적인 실태를 고발했다. 특히 기아와 에이즈는 전세계가 수십년 간 주목하고 퇴치를 다짐해 온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사태가 악화하고 있으며, 이런 상태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기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1990년대 후반 이후 굶주림에 허덕이는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 유엔이 2015년까지 기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96년 설정한 목표는 실현이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유엔은 '2003 세계식량 불안정상태'라는 보고서에서 "1999∼2001년 7명 중 1명 꼴인 8억 4,000만 명 이상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며 "개도국에서는 1995∼2001년 영양부족에 걸린 인구가 매년 450만 명씩 늘어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아급증은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심각하다"며 이는 내전과 가뭄, 에이즈, 무역장벽 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식량 수급에 대해 유엔은 "생산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며 "문제는 식량의 절대량이 아닌 정치적 의지의 부족"이라고 꼬집었다.
유엔은 기아와 에이즈의 관계도 점점 밀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즈가 창궐하는 국가에서는 농사짓는 인구가 부족해져 버려지는 농토가 많아지고 있으며, 이는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도시로의 인구 유입을 늘려 이들이 호구지책으로 성매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 에이즈
에이즈를 퇴치하려는 전세계 노력은 "완전히 부적절한 것"이었으며 "앞으로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질 수 있다"고 유엔에이즈퇴치계획(UNAids)이 이날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경고했다.
'에이즈 전염 최신정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유엔은 "2003년 현재 에이즈 환자와 바이러스(HIV) 감염자는 4,000만 명 수준"이라며 "이중 올해 300만 명이 숨지고 500만 명이 추가로 에이즈에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유엔은 "에이즈로 인한 사망 위험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며 이는 예방이라는 시급한 현안을 내버려둔 채 사후 치료에 재원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이즈가 심각한 국가의 임신부 중 1%만이 에이즈 테스트와 상담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 같은 예방노력 부족이 부모에게서 자녀로 에이즈가 유전되게 하는 심각한 요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엔은 올해 에이즈 관련 예산으로 47억 달러가 책정됐으나, 이는 적정 재원인 100억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라고 밝혔다.
● 여성폭력
AI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인권침해 사례라고 지적했다.
AI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강간과 여성할례가 전세계적으로 여전히 만연해 있다"며 "매년 1억 2,000만 명의 여성이 잔인한 할례에 시달리고 있고, 미국에서만 70만 명 이상이 강간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남아공에서 발생하는 강간사건은 하루 평균 147건으로 가장 많았고, 방글라데시는 여성에 대한 살인사건 중 절반 이상이 남편, 연인 등 파트너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분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세계은행의 통계로는 5명의 여성 중 한명은 어느 시점에서 구타를 당하거나 성적으로 학대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는 25일을 '여성폭력을 근절하는 국제연대의 날'로 정하고 전세계에서 가두행진과 집회를 가졌다. 남아공은 이날 케이프타운에서 남성들의 양심을 촉구하는 '좋은 남성들의 행진' 가두시위를 벌였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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