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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포트/보령제약 김승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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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포트/보령제약 김승호 회장

입력
2003.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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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리도 아닙니다…'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한 용각산. 직장인치고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한 두 번 안 먹어 본 적이 없는 겔포스. 대부분 아기 엄마들이 알고 있는 젖꼭지 '누크(NUK)'. 수 많은 히트 상품들로 소비자들과 친숙한 보령그룹을 이끄는 김승호(金昇浩·71)회장은 국내 제약업계의 산 증인이다.신혼 집을 팔아 마련한 3평 짜리 약국에서 출발해 보령제약과 보령메디앙스, (주)보령 등 연매출 3,000억원에 이르는 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1963년 '인류건강을 위한 기업'을 이념으로 보령제약을 창업한 후 40여년동안 '제약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중·고교 시절 친척이 운영하는 종로5가의 약국 2층에서 기거하며 약국 일을 배웠다. 일을 거들면서 약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아 갔다. 육군 공병단 중위를 끝으로 군에서 제대한 뒤 있는 돈을 다 털어 57년 10월 종로5가에 보령약국을 세운 것도 그 경험에 힘입은 바 크다. 상호는 출생지인 충남 보령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약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보령약국으로 종로 5가를 약국거리로 만들었다.

약국 문을 가장 먼저 열고, 가장 늦게 닫는 각고의 노력 끝에 보령약국은 '값싸고 친절하고 없는 약이 없는 약국'으로 명성을 쌓아갔다. 보령약국은 약국의 근대화에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팔리는 의약품의 품목과 수량을 기재하는 '전표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바코드를 이용한 판매시점관리(POS)의 원시적 형태라 할 만하다.

지금의 택배나 오트바이 퀵서비스에 견줄만한 '자전거부대'도 편성했다. 지금은 모든 약국에 비치된 오픈 진열대도 김 회장이 처음 도입했다. 고객이 제품을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게 하려는 고객만족 경영에서 우러난 아이디어였다. 날로 번창하는 약국에 만족할 법도 했지만 김회장은 약국을 약사인 동생에게 넘겨주고 제약업에 진출했다. 당시 국내 의약품 시장은 생산과 유통에서 일대 과도기였다. 50년대 중반부터 의약품의 국산화 물결이 일기 시작했지만 일반 소비자의 외제선호도는 여전했다. 외국과의 기술제휴를 모색하거나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았다.

경제부흥운동이 한창인 63년 도산위기에 빠진 부산의 동영제약을 인수, 64년 초부터 아스피린 APC감기약 등을 내놓았다. 보령이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인 약은 용각산. 일본의 기술을 도입해 내놓은 거담진해 생약재였다. 용각산은 당대 최고의 광고비를 쏟아 부은 데다 뇌리에 남는 광고문구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70년대 들어서는 현대화한 신약 생산에 나서 '헤파리겐' '바파린' '겔포스' 등의 스테디 셀러를 줄지어 탄생시켰다.

이중에서도 겔포스는 보령제약의 간판제품이 됐다. "70년대 초반에는 위장병이 가장 흔한 질환이었습니다. 약효가 신속하고 휴대가 간편해 '주머니 속의 액체 위장약'이란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지요." 겔포스는 지금도 연간 15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00년에는 마그네슘 성분을 보완한 '겔포스-M'을 새로 발매해 후발 제품들을 큰 격차로 앞서고 있다. 보령제약의 스테디 셀러 약품들은 모두 30년 이상 소비자들에게 꾸준하게 사랑 받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보령제약에도 위기는 있었다. 77년 7월 하룻밤 사이에 420㎜가 쏟아진 집중호우로 안양공장이 수몰됐다. 당시 제약업계에서는 '이제 보령은 끝났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는 거래선의 도움으로 4개월 만에 공장가동을 재개했다. 외상으로 약품을 받았던 약국과 도매업체들이 기일을 앞당겨 잔금을 현금으로 지급해준 덕택에 위기를 쉽게 극복 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은 기업경영에서는 생산성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99년 21세기 비전으로 'NEO 21'을 선포했다. 새롭게(Newly), 빠르게(Early), 으뜸으로(Only) 급변하는 디지털시대를 헤쳐나가자는 5개년 경영계획이다. 비전과 계열사별 경영목표, 개인 목표 등을 '타임캡슐'에 담아 본사 로비에 보관 중인데 2005년 1월 1일 개봉해 실제 성과와 비교해 볼 계획이다.

그는 남달리 산모유아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10여년간 준비해온 '아이맘 서비스'에 제대혈 서비스를 접목, 임신부터 출산, 유아의 성장에 이르기까지 유아와 산모의 건강을 책임지는 토탈 서비스를 완성했다. "출산율이 줄어들어 앞으로 50년 후면 우리나라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아기를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도록 산모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선천적으로 젖을 빨기 어려운 유아들을 위해 무료로 젖꼭지를 보급하고 있지요."

고희가 지난 나이에도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회사경영을 챙기고 있다. "제약을 축으로 삼아 토털 케어 사업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임상의학적으로 입증된 제품만을 만들어 소비자와 환자에게 제공할 생각입니다."

제약업에 관한 한 그의 의지와 열정은 끝이 없었다.

/김혁기자 hyukk@hk.co.kr

1932년 충남 보령 출생

국학대학 상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

57년 보령약국 개업

63년 보령약품(주) 창립

66년 보령제약(주)로 상호변경

72년 철탑산업훈장 수훈

90년 (주)보령 창립

91년 한국제약협회장, 세계대중약협회장

2000 대한민국 마케팅대상 수상

2001 한국능률협회컨설팅 '한국 경영자상'수상

2003 다산경영상 수상(창업경영인부문)

● 나의 경영철학

나의 경영철학이자 생활철학은 성실과 신뢰다. 성실하게 사는 모습을 통해 주변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이 성실성이 원활한 비즈니스로 연결된다는 점을 몸소 체험한데 따른 것이다.

보령약국 시절 나는 다른 어느 약국보다 일찍 문을 열었고, 늦은 밤까지 환자를 맞았다. 환자가 원하는 약이 없을 땐 자전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누비며 약을 구해 왔다. 1977년 안양공장 침수로 회사가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 때 거래처들이 앞을 다투어 도와줘 극적으로 회생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의 신뢰와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다.

나는 이때부터 '대인관계에서 1% 양보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신용을 잃은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는 젊었을 때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인재를 소중히 여긴다. 인재 경영이라는 말이 요즘에 대두되고 있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인재중심·인간중심의 경영을 해 왔다고 자부한다. '사원=가족'이라는 전통적인 인재관을 중시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회사는 79년 1월부터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생일조찬회를 열고 있다. 보령의 전 계열사 직원 중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사원들이 모여 나와 아침식사를 같이 한다. 생일을 축하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갖는 이 모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보령제약은 어떤 회사

보령제약은 생약제재와 치료제 위주의 의약품 생산을 고수해오고 있다. 특히 신약과 개량 신약, 제네릭 약품을 약효군(群)별로 세분화해 연구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신약부문에서는 새로운 고혈압치료제 BRA-657의 임상실험을 실시 중이다.

또 일본 고토부키사 A-II 계열 고혈압 치료제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확보하고 국내 임상실험을 위해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6개 병원과 계약을 체결했다. 독자적인 신약개발의 경우 투자와 국제 마케팅에서 불리한 여건이지만 기술개발은 승산이 있다고 보고 연구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1963년 보령제약이 창립된 이후 유아용품 전문회사 보령메디앙스(79년), 종합 커뮤니케이션 회사 킴즈컴(86년), 종합 유통회사 (주)보령(90년), 첨단 생명공학회사 보령바이오파마(91년), 정보통신 전문업체 BR네트콤(96년) 등을 차례로 설립, 2003년 현재 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계열사 모두 건강과 관련된 제품을 서비스하는 '토털 헬스케어 그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약품, 의료기기, 건강식품, 유아용품, 생활용품 뿐 아니라 제대혈(탯줄 혈액)을 기반으로 한 제품, 노인들을 위한 실버제품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작년 말 전체 매출액은 2,300억원. 2005년까지 5,000억원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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