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유명하고, 오래 되고, 기념비적인 문화유산만 보전할 가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도시나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유산도 중요합니다. 문화유산 보전의 목적은 한 나라의 역사와 특성을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근·현대 문화유산에 대한 등록제도는 역사 보존의 대상과 방법을 확대하는 매우 바람직한 조치입니다." 문화재청의 해외 전문가 초청 강연 차 입국한 박소현(42) 미국 콜로라도대 도시설계·디자인학과 교수는 근대문화유산 보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그는 26일 대전 정부청사에서 문화재 전문가와 한국전통문화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근·현대 문화유산 보존 정책과 현황을 소개했다. "미국은 1966년 역사보존법을 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건국 초기 대통령들의 생가나 저택, 식민지 시절과 남북전쟁 당시의 중요 유적 등에 국한됐던 보전 대상이 각 주와 도시, 마을 등의 50년 이상 된 유물·건물·건물 외 건조물·유적·역사지구까지 넓어졌고, 보전 방법도 기존의 박물관화를 넘어 일상적 사용을 전제로 하는 등으로 다양해졌습니다. 이 법에 따른 등록문화재는 7만 7,000여 건, 대상이 된 건물과 구조물은 120만 개에 이릅니다. 시애틀의 재래시장, 뉴욕의 차이나타운 등 도시나 마을의 오래된 역사지구도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보호하고 있지요."
우리나라의 근대문화유산 등록제도는 2001년 7월 도입됐으며, 올해 8월 말 문화재청에 전담 부서인 근대문화재과가 생겼다. 이 제도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근·현대 시기에 형성된 건조물 또는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 중 보존가치가 큰 것을 등록해 보호하는 것으로, 개화기를 기점으로 해방 전후까지의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지정문화재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지만 등록문화재는 외형은 손대지 않고 내부는 용도를 변경해 사용할 수 있어 보존 방법이 좀더 유연한 게 특징이다. 이에 따른 등록문화재는 서울 남대문로의 한국전력 사옥 등 65건이며, 지정문화재는 국가 지정 2,951건, 시·도 지정 8,629건이다. 5,000년 역사를 내세우는 우리와 역사가 250년도 안 된 미국의 문화유산 목록이 차이가 뚜렷하다.
"근·현대 문화유산을 보전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최근 50년대 이후의 주요 건물이나 대중문화 흔적까지로 대상을 확대하고, 백인 남성 위주의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이나 소수민족의 역사를 담은 문화유산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식민지 시절 백인 농장주의 저택 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들이 살던 집, 20세기 초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기숙사 등도 미국사의 일부로 복원되고 있지요." 물론 미국에서도 보전과 개발의 갈등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근대문화유산을 파괴하기보다는 보전해서 관광자원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 확산돼 70년대 초반의 근대문화유산 보존운동을 개발업자들이 주도하기도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의 경험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지만 좋은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66년 미국역사보존법 제정에는 1950∼1960년대 초 미국 전역에서 도시개발 붐으로 문화유산이 대량 파괴된 데 따른 반성과, 60년대의 반전·인권 운동 등 사회적 분위기가 작용했습니다. 최근에는 각 도시의 역사적 시가지 보존과 개발을 주민 제안과 참여로 진행하고, 정부가 이를 재정적·기술적으로 돕는 것이 방법론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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