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수현은 '멜로' 드라마 작가다.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등 '사랑'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드라마나, '배반의 장미' '청춘의 덫' '모래성' 등 사랑의 대명사가 제목으로 쓰인 드라마는 모두 힘든 사랑을 그려낸다.사랑이 고단하려면 걸림돌이 있어야 하는데, 삼각관계는 기본이지만 더 중요한 변수는 계급적 문제다. '야망의 계절'이나 '사랑과 야망' 등 그의 대표작은 모두 배경 없는 여자가 부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모멸을 자초하는 일인지를 증명했고, 리메이크까지 된 '청춘의 덫' 역시 배경 없는 여자가 잘난 남자를 사랑하다가 부잣집 딸에게 남자를 빼앗기는 설정을 통해 '없는' 여자의 사랑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주었다.
'완전한 사랑' 역시 김수현식 계급 갈등을 그대로 표출한다. 첫 회부터 쏟아진 부자의 독설은 몇 번을 들어도 충격적이다. 생일을 맞아 시우 내외가 찾아가자 시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오백년 재수 빨리 몰아내", 그리고 아들과 헤어지면 빌딩을 주겠다는 제의를 하면서 또 이렇게 말한다. "10년이나 살았으니 살만큼 살았지, 어린 거 꼬여내 그 동안 너 좋은 거 다 해봤을 테고." 이 '회장님'의 유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들 재우가 시우가 사표 내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고 하자 이렇게 윽박지른다. "사표 써. 사표." 때로는 "뭐 하는 물건이야"라는 소리도 듣는다. 부자 아버지는 요즘 노인들이 누리기 힘든 대단한 권력을 누린다.
김수현 드라마의 부잣집 사모님과 회장님 혹은 사장님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주인공이 부잣집 아들일 경우 대부분 평균치 이상으로 성실하지만, 반대로 딸들의 행태는 심각하다. 리메이크판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의 사랑을 빼앗아 간 유호정은 제 성질대로 하지 못하면 생병이 나는 스타일이고, '완전한 사랑'의 시누이 연우(박지영)나 올케 소정(허영란)은 말버릇도 고약하고 안하무인이다.
이 모든 부자들의 설정은 주인공의 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이 사람들은 언젠가 두 사람의 고귀한 사랑을 인정하고, 개과천선할 것이고, '완전한 사랑'에서는 벌써 그것이 시작됐다. 영애가 곧 죽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회장님'과 그 자식들을 가까이 사귄 적이 없고, 앞으로 그렇게 될 확률도 별로 없는 일반 시청자들에게 작가가 제시하는 부자의 모습은 그들의 '싸가지' 없음에 대한 예방 주사 같다. 그래서 부자들의 이상한 행동을 보아도, 드라마 속 부자들도 그랬다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혹 부자인데도 싸가지 있게 행동했던 사람이라면 드라마를 보고 계급에 맞지 않게 행동한 자신을 반성해야 할 듯하다. 김수현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여지는 한국의 부자는, 간간히 들려오는 부자들의 패륜상을 더욱 확대해서 보여준다. 문제는 김수현 드라마는 그 싸가지 없는 부자를 일반화한다는 데 있다. 우리 부자들은 모두 그런 것일까, 김수현이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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