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는 드물게 숲이 우거진 산자락에 자리잡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322-2번지 단독주택. 이곳 마당에는 거대한 태양전지 세 개가 해를 따라 돌아간다. 태양전지에 잡힌 태양빛은 전기로 변해 전선을 타고 이 집으로 흘러간다. 해는 났지만 안개가 낀 25일 아침, 계량기에는 '0.35'라는 숫자가 깜빡거린다. 현재 0.35kW 전기가 태양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겨우 전등 두개 켤 정도의 양이지만 돌보는 사람 하나도 없이 태양전지 혼자서 만들어낸 전기라니 신통하다.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발전소인 나무학교집이다. 생태교육을 하는 시민단체가 들어서 있어서 나무학교집으로 이름붙여진 이곳에 24일 에너지대안센터가 입주했다. 에너지대안센터는 올 5월 바로 이 나무학교집에 최초의 시민발전소를 세운 단체이기도 하다.에너지대안센터 사무국장 이상훈(35)씨는 "시민들이 모금해서 만든 태양광발전소인데 나무학교집의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3개월째 사용되지 않고 있어서 에너지대안센터가 서둘러 들어왔다"며 "앞으로 1년동안 이곳에 지열과 풍력을 이용하는 발전시설도 세워서 에너지대안교육을 하는 현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에너지대안센터는 원자력과 석유·석탄이라는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에너지 공급을 태양과 바람, 조력 등의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바꾸는 방안을 찾기 위해 2000년 4월 탄생했다. 한국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필렬(45·한국방송대 교수)씨가 독일에 버금가는 에너지대안체계가 우리나라에도 자리잡도록 처음 제안했다. 현재 대표도 이필렬씨. "화석연료와 원자력은 폐기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언젠가는 고갈될 자원이다. 독일은 1990년대부터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전환을 시도해 이미 작년에 전기생산량의 5%를 풍력발전으로 만들었을만큼 에너지대안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도 서둘러 정책 전환을 하지 않으면 에너지 대란을 맞을 것은 물론 교토 의정서 체결에 따른 무역장벽과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창립회원은 50여명이었으나 현재 회원은 350명. 회원은 교수 교사 농부 연구원 주부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300명이 꼬박꼬박 월회비(일반 1만원, 학생 5,000원)를 내는 적극적 회원이다. 이 때문에 에너지대안센터는 사무국장과 간사 2명 등 상근직원이 3명이고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려는 이들에게는 가구당 100만원의 지원금까지 주는 등 재정이 튼실해보인다. "지원금이요? 그건 북한에 바람직한 풍력발전기 모델을 선정하는 작업을 하는 대가로 행정지원부에서 받은 1,000만원을 다시 국내 풍력발전기 보급에 돌리는 것"이라고 이상훈씨는 말한다. 에너지대안센터는 이런 식으로 회비 수입 말고도 회원들이 전문가로서 자문해주거나 연구용역을 받아 생기는 수입을 에너지대안센터의 활동에 다시 쏟아붓는다. 대신 기업체 협찬은 일체 받지 않는다. 이필렬씨는 "에너지대안운동은 에너지 공급원을 재생가능한 자연속에서 찾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에너지가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방식에서 지방과 시민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분권주의적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만큼 삶의 태도까지 바꾸는 운동인데 모든 면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신을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에너지대안센터의 회원들은 이 같은 원칙에 공감하고 실천하는 이들이다. 이곳 회원들은 어떤 시민단체 회원들보다 "회원 가입하라"고 열심히 권한다. 시민발전소가 만들어진 것도 모두 이들이 자발적으로 부조를 했기 때문이다.
나무학교집에 만든 시민발전소 1호도 회원 가운데 40명이 2,700만원을 출자하여 만들었다. 가장 적게 낸 사람이 20만원, 많이는 400만원까지도 냈다. 가장 많이 출자한 김추령(38)씨는 경동고등학교 과학교사이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과학교사모임 회원이기도 한 김씨는 지구과학이 전공. 그만큼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수업시간에도 자원고갈의 심각성을 많이 일러준다"는 김씨는 이필렬씨의 책 '에너지대안을 찾아서'를 보면서 에너지대안운동에 관심을 갖고 센터 창립회원이 됐다. 시민발전소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대안센터가 시민출자금을 공모하자 주저없이 거금을 냈다. "그 때 마침 적금을 탔는데 뜻있는 일에 쓰고 싶었다"고 김씨는 말한다.
에너지대안센터 감사인 기우봉(68)씨는 화석연료로 전기를 만들던 전문가이다.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58년 한국전력에 입사했고 이후 한화에너지(현재 인천에너지) 현대엔지니어링을 거쳐 94년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퇴직하기까지 화력발전소를 직접 건설하기도 했다. "화석연료가 바닥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정부 정책이 대안에너지를 쓰는 쪽으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어서 작은 목소리지만 의견을 내고 싶었다"는 기씨는 처음에 참여연대 운영위원으로 전력정책에 대안을 제시하다가 올 6월 에너지대안센터가 있는 것을 알게 돼 가입했다. 그는 현재 강원대 전기공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대안에너지 설비를 심도있게 공부하고 있다.
에너지대안센터가 적극 나서서 세운 에너지대안시설로는 전국에 태양광발전기가 2군데, 풍력발전기가 10군데에 있다. 태양광발전기는 둘다 3kW 규모로 각각 2,700만원씩 든 반면 풍력발전기는 1kW(8군데)짜리가 500만원, 3kW 짜리는 1,500만원, 10kW 짜리는 4,500만원이 들었다. 설치비 자체는 풍력발전기가 훨씬 싸지만 효율은 태양광발전기가 더 낫다. 풍력발전기 가운데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는 반면 태양광발전기는 둘 다 무리 없이 운용되고 있기 때문. 그래서 에너지대안센터는 대규모 단지는 풍력으로 하더라도 가정마다 보급하는 것은 태양광발전기로 가닥을 잡아놓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늘 해가 떠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용률은 13% 정도. 3kW짜리면 한달에 250kWh를 생산하는 정도이다. 채산성이 이렇게 없는데도 이 같은 에너지대안설비를 지속해야 하는 것일까.
이상훈 사무국장의 말. "일본의 대표적 태양광발전기회사인 샤프사가 작년에 생산한 발전설비가 모두 123㎿어치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작년 시장 전체규모가 1㎿ 정도였다. 이 때문에 영세업체만 참여하고 있다. 시장규모가 50㎿ 정도로 커지면 대기업이 참여하고 그러면 세계 최고 수준의 설비가 나와서 세계 시장도 넘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재생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은 필수적인데 거기에 보태 국내 환경산업 기술발전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필렬 대표는 "독일도 풍력발전기의 전기를 정부가 비싸게 사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우리도 긴 장래를 생각해서 현재는 비싸게 먹히더라도 에너지대안체계가 자리잡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작년 9월 대체에너지촉진법을 만들어 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는 1kWh당 107.66원에,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는 716.4원에 구매해주도록 제도화했다. 국내 전력회사에서 만든 전기가 1kWh당 100원이 채 안되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으로 비싼 가격이다. 정부는 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할 경우 설치비의 70%를 지원해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민간이 생산하여 팔린 전기는 없다. 우선 전기를 팔려면 전기사업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전력거래소에 가입해야 하는데 거래소 연회비만 해도 120만원이 든다. 또 전기를 220V 자체로는 판매하지 못하고 고압전기(2만2,900V)로 만들어 전봇대에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변압기가 따로 필요하다. 결국 대형업체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에너지대안센터는 이 때문에 이 같은 규정을 고치는 작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필렬씨는 "이 규정을 고치면 지자체가 세수를 높인다고 자연을 파괴하여 골프장을 짓는 대신 10억 정도 들여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는 일도 가능해진다. 에너지대안운동은 지방을 살리는 운동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풍력인가 태양광인가
에너지대안센터 이필렬 대표가 태양광발전기를 선호하는 반면 기우봉 감사는 현재로서는 "풍력만이 경제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발전설비의 채산성은 고정비와 가변비가 얼마나 드느냐에 좌우된다. 수력 원자력은 처음 설비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고정비가 많은 반면 운용에 드는 가변비는 적다. 반면 화력발전은 계속 석탄이나 석유를 때줘야 하므로 가변비가 많이 든다.
이렇게 고정비와 가변비를 합쳐서 kW당 단가가 3,000달러를 넘어가면 그 전력설비는 채산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 현재 수력발전은 2,000∼3,000달러, 원자력은 2,500달러가 든다. 석유화력은 800달러, 석탄화력은 1,200달러이다.
반면 풍력은 국제시세가 설비가격은 1,000달러선으로 떨어졌으나 바람이 없으면 가동률이 형편없는 것이 문제. 대신 수리나 연료비 같은 가변비 부담이 없기 때문에 석탄화력의 85% 정도인 현재 가격은 채산성이 있는 걸로 평가한다. 바람이 없을 때를 감안하면 800달러선까지 떨어지면 가장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국내서는 유니슨(주)가 내년부터 강원도 대관령에 98㎿급, 경북 영덕에 40㎿급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키로 하고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심사를 받고 있다. 유니슨 김두근(44) 기술연구소장은 "전력사업 가능성을 2001년초부터 타진했으나 전국에서 풍력발전을 유럽 수준(이용률 20∼25%)에 맞출 수 있는 곳은 동해안과 남해안과 일부 산간지방 및 제주도 정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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