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극한 대립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한나라당이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비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국회 보이콧을 시작으로 초강경 투쟁에 돌입함으로써 정국 마비의 상황이 가시화하기 시작했다.우선 한나라당의 등원 거부는 새해 예산안을 비롯한 국정 주요 현안의 처리에 심각한 차질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이 연내에 처리되지 않아 자칫 올해 예산집행액을 기준으로 준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또 이라크 파병동의안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지방분권 3법,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을 포함한 정치개혁안, 부동산 대책 관련법안 등 화급을 다투는 쟁점 현안의 표류가 불가피하다. 더욱이 한나라당 의원들이 최병렬 대표에게 사퇴서를 맡기는 등 의원직 총사퇴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자칫 출구가 보이지 않는 무한대치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 모두 이런 극단적 상황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대결 국면을 마냥 끌고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한나라당은 '재의'(再議)라는 법적 절차를 내팽개치고, 국정을 볼모로 한 투쟁에 나선 데 대해 스스로도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게다가 총선준비도 서둘러야 할 입장이다. 때문에 투쟁이 장기화하고, 강도가 높아질수록 당 지도부의 느슨한 장악력에 비추어 내부 균열이 일어날 소지가 적지 않다.
청와대 역시 비록 '조건부'라는 모양새를 갖추었으나 대통령 측근의 비리의혹에 대한 특검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다수 여론에도 불구하고 거부한 데 따른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한나라당은 28일의 민주당 전당대회가 국면 전환의 첫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새로 구성된 민주당 지도부가 재의에 부쳐진 특검법에 찬성할 뜻을 밝힐 경우 재의에 응하겠다는 게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특검법은 국회로 반송된 뒤 16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5월29일까지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그때까지는 언제든 재의에 부칠 수 있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이 총체적 국정위기 상황에 위기를 느껴 본인이 밝힌 대로 정부가 마련한 새 특검법을 국회에 제출하거나, 아니면 국회에 새 특검법 제정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기대 섞인 전망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여론이 청와대와 한나라당 중 어느 쪽으로 쏠릴지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다. 민주당에 새 지도부가 들어서고, 여론 향배가 드러날 이번 주말이나 내주 초에 가서야 이번 대결정국의 변화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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