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수명한 이 땅에는 고승대덕도 많다. 불교가 그만큼 토착종교임을 말해준다. 11월 들어 청화(淸華), 정대(正大), 덕암(德庵) 스님이 차례로 입적했다. 늦가을 고목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들은 고요하게 열반에 들었다. 그들이 남긴 임종게, 혹은 열반송의 언어적 무늬가 단풍처럼 아름답다. 가타(伽陀)라고도 불리는 게(偈)는 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미하는 노래 글귀다. 승려가 세상을 뜨며 한 줄의 임종게를 남기는 것도 불교적 전통이다. 임종게는 스님이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 된다.■ 하루 한끼만 드는 원칙을 고수해온 청화 스님은 40년간 눕지 않는 장좌불와와 오랜 묵언(默言)수행을 해왔다. 그의 임종게는 자비와 무욕으로 가득하다. <이 세상 저 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은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정대 스님의 언어는 매우 현대적이다.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문학적 낭만까지 느껴진다. <올 때도 죽음의 관문에 들어오지 않았고 갈 관문을 벗어나지 않았도다 천지는 꿈꾸는 집이어니 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임을 깨달으라.>올> 이>
■ 태고종 종정 덕암 스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다. 평생 청정수행하면서 대중교화와 후학양성에 힘써온 이 보살승에 의해, 또 한번 불가에서 전해 오는 선승의 전설이 이루어진 셈이다. <…내가 법계를 관하니 본 성품이 없더라/ 나고 죽는 것을 열반이라 하나 또한 상이 없다/ 만약 사람이 나한테 가고 오는 곳을 묻는다면/ 붉은 해가 극락세계를 비추며 구름이 모여 흩어지는 것과 같다.> 그가 입적에 앞서 들려준 이 임종게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큰 불교적 진리를 부드럽게 싸고 도는 것 같다.
■ 성철 스님은 단순한 법어로 중생의 의표를 찔렀다. 쉬우면서 또 그로 인해 오히려 오묘하게도 들리는 것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일 것이다. 거기에는 한번 들으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생명력과 위대함이 있다. 이에 비견될 만한 열반송도 있다. 지난 봄 서암 스님이 남긴 임종게 아닌 임종게다. 제자들이 열반송을 물었다.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할까요?"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그렇게 인간적이었다. 황혼이 동트는 아침보다 찬란하듯이, 무(無)의 사상을 실천한 고승의 마지막 모습들이 아름답다. 산은>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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