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사태가 피 한방울 흘리지 않은 '벨벳 혁명'으로 마무리된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그루지야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적극적인 막후 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송유관을 둘러싼 이권과 체첸과 맞닿은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일치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5년 가동을 목표로 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터키를 잇는 BTC 송유관을 건설 중이다. 러시아 영토를 거치지 않는 이 송유관을 통해 중동에 이어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 주도권을 독차지하려 하는 미국으로서는 그루지야의 안정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AP 통신은 24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지난 주말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사임을 종용하는 방법으로 막후 역할을 했다"고 보도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했다.
러시아는 석유를 둘러싼 미국의 움직임 외에도 분리독립 운동을 하고 있는 체첸 문제가 관건이었다. 그루지야 북부 산악지대는 체첸 반군의 요새이다. 또 러시아는 그루지야에서 유혈 사태가 일어나면 혼란을 틈타 체첸 반군이 활개를 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러시아는 그루지야 사태가 일단락되자마자 새 정권에 대해 경쟁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파월 장관은 24일 니노 부르자나제 임시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 의사를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차기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복원하기 바란다"고 압력을 넣었다.
한편 그루지야 의회는 45일 이내에 후임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방침에 따라 내년 1월 4일 대선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셰바르드나제는 24일 "조국에 머무르겠다"고 밝혀 독일 망명설을 일축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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