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10명의 연예인 가운데 팀의 게임을 방해하고 팀워크를 교란하는 임무를 맡은 X맨이 정해진다. X맨은 은밀하게 훼방을 놓고, 참가자는 매회 게임을 마친 뒤 X맨이 누구인지 맞혀야 한다. 참가자들이 X맨의 정체를 밝힐 경우 미션에서 획득한 상금은 각 팀의 이름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모아진다.지금까지 3회가 방송된 SBS 오락프로그램 '실제상황 토요일'(토 오후 5시50분)의 주요 내용이다. '본격 심리추리 버라이어티'라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어필해 SBS 신설 주말 오락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12.7%)을 기록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장면 둘. 경기에 참가한 10명(혹은 15명) 중 한 명이 스파이로 정해진다. 참가자는 스파이의 방해를 받으며 임무를 수행해야 하며, 중간중간 스파이로 의심 가는 사람을 추방하는 서바이벌 형식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지난해 미국 ABC에서 방송돼 큰 인기를 얻었고, 올 초부터 국내 Q채널에서도 방영 중인 '더 몰' (원제 The Mole, 한국방영 제목 '스파이를 찾아라')의 내용이다.
두 프로그램은 한 명의 훼방꾼을 투입해 그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심리추리 요소를 새로 추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요 구성이 똑같다 보니 "잠깐만이라도 누구를 믿고 싶어요"('더 몰')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요"('실제상황 토요일') 등 유사한 대화가 나오게 마련이다. 프로그램 시작 부분, X맨과 스파이의 역할과 게임의 룰을 설명해주는 내레이션의 분위기도 흡사하다.
이에 대해 '실제상황 토요일'의 공희철 PD는 "레크레이션 게임의 일종인 '마피아 게임'에 착안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더 몰'이란 프로그램은 기획 단계에서 전혀 참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두 프로그램은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일반인이 출연하는 '더 몰'은 출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가 쫓아가 보여주는 일종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대형 프로그램답게 야외 촬영이 많고 매회 주어지는 임무도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다. 반면 '실제상황 토요일'은 연예인을 출연시키고 스튜디오 안에서 간단한 게임을 진행하는 소규모 쇼 프로그램으로, 출연자의 흥겨운 댄스대결도 보여주는 등 국내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잘 나가는 외국 프로그램의 핵심 구성만 따와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인 양 만드는 전례가 되풀이됐다고 지적한다. '실제상황 토요일' 인터넷 게시판에는 "처음에는 설마 했는데, 팀워크를 해치는 인물의 존재와 그 인물을 패널이 맞히는 방식이라니. 단 한편만 봐도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은근슬쩍 베껴서 조악한 아류로 만들었는지 바로 알 수 있다"(방혜진)거나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X맨을 찾는 것은 스파이를 찾는 '더 몰'이라는 프로와 비슷하고, 누군가를 X맨으로 뽑을 때 한명씩 나와서 이름을 쓰고 이유를 말하는 것은 CBS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버'에서 마지막에 매번 하는 형식"(우민정)이라는 등 의혹을 제기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더 몰'의 인터넷 팬사이트에는 "TV(실제상황 토요일)를 보면서 저거 '더 몰'이잖아 하고 외쳤다"는 글까지 올랐다.
방송 3사의 가을개편 이후 벌써 몇몇 프로그램은 눈밝은 감시자들에 의해 외국 프로그램 베끼기 논란을 불렀다. 그럴 때마다 제작진은 '우연의 일치'를 되뇌고 있지만 시청자와 네티즌들이 언제까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 줄까.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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