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LG카드에 2조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키로 결정한 23일 밤, 기자회견장에 있던 한 시중은행 임원이 볼멘 소리를 했다. "그 동안 LG카드나 LG그룹이 한 일이 뭡니까. 꾸준한 자본확충을 했다고 하더니 결국 은행에 2조원 달라고 한 것밖에 더 있습니까."부도 직전까지 갔던 LG카드 사태가 일단 급한 불을 껐지만 남은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릇 모든 사태에는 본말이 있고, 해법은 이 본말에 상응해야 하는데도 이번 LG카드 대책은 전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생각때문이다.
LG카드 사태의 본말은 간단하다. 카드사의 무분별한 회원 유치 경쟁과 자산 늘리기, 그리고 경기침체와 연체율 증가로 인해 '나가는 돈'은 많았고 '들어오는 돈'은 적었던 것이다. 다른 카드사들이 LG카드를 덩치만 키우다 기상 악조건을 맞아 전멸한 '빙하기의 공룡'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LG카드 사태의 해법은 이러한 본질은 손대지 못했다. 우선 LG카드가 받아낸 2조원은 수익구조 개선을 통해 '들어온 돈'이 아니다. 1년 내 갚아야 할 돈이다. 업계 최대자산 규모를 감안할 때 향후 '나가는 돈'이 대폭 줄어들 여지도 커보이지 않는다. 경영정상화를 책임져야 할 LG그룹에 대해서도 채권단의 신뢰는 높지 않다. 한마디로 금융시장 파국을 우려한 정부와 채권은행의 미봉책인 셈이다.
한 은행 임원에 따르면 채권단이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개인 연대보증을 요구했을 때 LG그룹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삼성이었어도 이렇게 막 대했겠느냐?" 이 임원은 "LG카드 경영정상화에 안달이 난 쪽은 LG그룹이 아니라 오히려 은행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관명 경제부 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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