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 힘든 수업, 이제는 그냥 참지 마세요. 언제든 강의실에 비치된 레드카드만 꺼내 드시면 됩니다." 중앙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두드림'(do dream) 선거운동본부는 '레드카드제' 도입을 공약했다. 무단휴강이나 강의실 내 성폭력은 물론 수업에 대한 불만을 강의실에 상시 비치된 '레드카드'를 통해 접수하겠다는 것. '두드림' 이경호(23·경제학과4년) 후보는 "레드카드제가 형식적으로 진행됐던 강의평가를 보완하는 효과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캠퍼스에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총학생회장 후보들의 '표밭 갈이'가 한창이다. 올 가을 선거의 화두는 수년간 반복된 무관심과 저조한 투표참여의 극복. 각 선본은 저마다 학생들에게 쉽게 '꽂힐 수 있는' 이색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의 눈길 끌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매주 뽑혀 나가는 사자 이빨이 평균 5개입니다. 이제는 사자이빨 특산품을 판매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한양대 '소리 없는 99%의 명예혁명' 선본은 학교의 명물 '사자상 구하기'에 나섰다. 고시생들 사이에 "사자 이빨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합격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매일 밤 사자 이빨이 뽑혀나가기 시작한지 벌써 10년째. '명예혁명'의 선본 관계자는 "더 많은 학생들의 수요를 채워주기 위해 사자이빨 열쇠고리 등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겠다"며 "사자 이빨을 지니고 다니면 학교에 대한 자긍심도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이색공약 홍수 속에 아예 '무(無)공약'을 내세운 선본도 있다. 숭실대의 '표현하는 즐거움' 선본은 "공약 대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당선 이후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나섰다. '표현하는 즐거움'의 윤지민(29·컴퓨터학부4년) 후보는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내세우는 대신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꾸려나가는 학생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헌 회장 자살 이후 일부 학교에서 추진됐던 '금강산 모꼬지(MT)' 붐은 '대북교류사업 공약'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숭실대 '자신있다 청춘도약'의 김은환(24·벤처중소기업학부3년) 후보는 "106년 전 평양에서 개교한 모교의 전통에 대해 홍보가 부족했었다"며 "평양 옛 숭실학교 터를 방문하는 행사를 마련하면 학교 홍보에 도움이 되고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 '학교로II' 선본도 북한 김일성 종합대와 '서김제'를 열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학교로II' 의 은석(23·사회복지학과4년) 후보는 "서김제는 한반도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법적인 자문도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후보들의 '이색공약'에 대해 학생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고려대 인문학부에 다니는 장모(20·여)씨는 "톡톡 튀는 공약들 덕분에 선거벽보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친구들도 예년 선거에서 선배들의 분위기에 휩쓸리던 것과 달리 이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공약을 내놓은 후보를 지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학원생 이모(28·서울대 행정대학원)씨는 "학생회선거가 기성 정치판을 닮아가는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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