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당정치에서 대변인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일까. 정치판을 이전투구로 몰고가는 장본인인가, 아니면 욕을 먹으면서라도 소속정당을 방어해 내야 하는 필요악적인 자리인가. 정치개혁을 거론할 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얘기가 대변인제 폐지다. 상호비방과 무의미한 말싸움을 없애자는 취지에서다. 지난 봄 대선의 민심이 정치개혁에 있음이 확인돼 각 정당이 백가쟁명 식 개혁안을 내놓았을 때도 대변인제 폐지의 필요성이 어김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어느 당도 앞장서 이를 없애지 못했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자 오히려 대변인실의 기능을 강화하는 추세다. 각 당은 선거 때만 되면 수십명의 부대변인 등을 두고 성명을 토해 낸다.■ 대변인제를 폐지키로 한 열린우리당에서 대변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당은 대변인을 두지 않고 원내문제는 원내대표단의 홍보담당 부대표가, 당내 문제는 중앙당의 홍보위원장과 공보실장이 각각 발표를 맡도록 했다. 우리당 당헌에는 대변인 관련 규정이 아예 없다. 그러나 대변인이 없어 당의 입장표명이 더디고, 여러 사람이 역할을 분담하다 보니 당론에 혼선이 있는 것처럼 비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대변인 부활이 힘을 얻고 있다. 죽기살기 식으로 싸우는 대선자금 정국에서 대변인이 있어야 그나마 기민한 대처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치개혁의 하나로 대변인제를 폐지했는데 막상 해보니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푸념이다. 상대당도 대변인이 없어야 같은 조건이 될 터인데, 혼자만 없애 놓고 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 대변인은 한때 '정당정치의 꽃'으로 불리기도 했다. 촌철살인의 재치있는 논평과 어지러운 정국을 꿰뚫는 압축된 표현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은 경우도 있었다. 매스컴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단시간에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고, 당의 총재나 대표와 호흡을 맞추며 정치실세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판이 말꼬리를 잡는 막말공방의 장이 되고,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저질표현이 난무하면서 존폐가 거론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 대변인을 두지 않는 실험은 우리당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출범한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 21도 처음에는 대변인제를 폐지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다가 대선정국이 본격화하자 할 수 없이 대변인을 두어야만 했다. 대변인이 없어도 되는 정당정치가 가능해야 우리 정치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당의 대변인제 부활 여부를 주목하는 이유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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