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강경진압이 시작된 전북 부안 시내는 21일 주민들이 생업에 매달리는 등 겉으로는 비교적 평온해 보였으나 민심은 흉흉했다. 주민 2만 여 명이 사는 읍내에는 경찰 75개 중대 8,000여 명이 배치돼 계엄령을 방불케 했다. 당황한 주민들의 투쟁 강도는 다소 누그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경찰과 공무원, 외지인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초리에는 거부감을 넘어 증오에 가득찼다.경찰은 이날 부안수협 앞 집회장을 선점하는 등 이틀째 촛불집회장을 봉쇄했다. 주민 200여명은 오후 8시께부터 50여명 단위로 네 군데로 나뉘어 집결, 부안수협 옆 버스터미널 등에서 구호를 외치며 원천 봉쇄에 항의하기도 했으나 별 마찰은 없었다.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는 이날 오전 부안성당에서 긴급 상임위원회를 열고 앞으로 과격시위 대신 비폭력적 저항운동을 벌이고 금지된 촛불집회는 골목에서라도 계속 하기로 결정했다. 대책위는 주민들에게 물리적인 정면충돌을 피하고 밤마다 촛불을 켜 들고 수협 앞 민주광장으로 모이자는 긴급 행동지침도 발표했다.
김진원(44) 대책위 조직위원장은 "엄청난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정면대응 하는 것은 무모해 87년 6월 항쟁처럼 삼삼오오 모여 의사를 표현하는 슬기로운 투쟁을 하겠다"며 "촛불집회 금지에 대해 공권력으로 국민을 누르는 시대는 지났으며 더 큰 공권력은 더 큰 저항을 부른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미 대책위의 통제를 벗어난 주민들은 경찰이 수협 앞 촛불시위를 원천봉쇄하고 연단을 철거하자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7월부터 사업까지 팽개치고 투쟁에 나섰다는 변모(46·사업)씨는 "경찰을 동원해 해결하려는 정부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성난 주민들이 자해 또는 분신하는 돌발적인 사태가 생기거나 민란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주민 이모(33·여)씨는 "군민들은 이제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며 "가급적 빠른 시일내 주민투표를 해야만 희생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안=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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