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1월21일 제라르 다보빌이라는 46세의 사내가 거룻배를 저어 미국 워싱턴주 일와코에 도착했다. 그는 그 해 7월11일 일본 혼슈(本州) 남동단의 지바현(千葉縣)을 출발했었다. 134일 동안 오로지 노를 저어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위업을 이뤄낸 것이다. 사나운 물결에 배가 뒤집히는 일은 다반사였다. 하루에 배가 여섯 차례나 뒤집힌 적도 있었다. 거룻배를 통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동안 이 프랑스인의 몸무게는 15kg이나 줄어들어 있었다.다보빌은 그보다 11년 전에도 거룻배로 미국 매서추세츠의 뉴포트를 출발해 71일 동안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의 브레스트에 도착한 바 있다. 그러나 다보빌이 대서양을 가로지른 최초의 뱃사공은 아니었다. 알랭 봉파르라는 사내가 이미 1952년에 대서양을 노 저어 건넌 적이 있었다. 아무튼 다보빌이 대서양을 횡단할 무렵만 해도, 거룻배로 할 수 있는 가장 먼 바다여행은 대서양 횡단이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여정이 길면 길수록 식수와 식량으로 배가 무거워지기 때문이었다. 다보빌이 대서양을 횡단하기 시작했을 때, 무려 950kg에 이르렀던 캡틴쿡호의 반 이상은 물 무게였다.
그러나 양질의 식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서바이버'라는 상표의 물 펌프가 실용화하면서 다보빌은 태평양 횡단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게다가 통조림 음식을 '우주 시대에 걸맞은' 마른 음식으로 대치함으로써 배의 무게를 한결 더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태평양을 건넌 섹터호는 두 대의 서바이버를 비롯한 모든 장비를 부착하고 다보빌을 실은 뒤에도 무게가 500kg에 못 미쳤다. 그래도 태평양 횡단은 끔찍한 고독과 공포와 권태와 피로와의 싸움이었다. 노를 저으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보빌은 답했다. "오직 미국만을 생각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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